경찰ㆍ국가정보원ㆍ군(軍) 등 국가 기관이 지난해 대선에 깊숙히 개입됐다는 의혹을 증폭시키면서, 민주당 분위기도 ‘격앙’되고 있다. 도청 사건으로 하야한 미국 대통령 ‘닉슨’과 3ㆍ15 부정선거로 하야한 ‘이승만’의 이름도 의원들 사이에 오르내린다.
그러나 당 지도부는 아직은 여론을 좀 더 지켜보자는 입장이다. 국회 일정으로는 국감과 대정부질의 등이, 사법 일정으로는 검찰의 수사결과 발표와 법원 선고 등이 남아 있어 언제든 뜨겁게 타오를 수 있는 사안이란 설명이다. ‘대통령 새로 뽑자’, ‘재선거’ 등 과격한 주장에 대해선 확실히 선을 긋겠다는 의지도 드러내고 있다.
민주당 핵심관계자는 23일 헤럴드경제와의 통화에서 “정서적으로나 감성적으로 지난 대선에 대해서 인정할 수 없다는 분위기가 의원들 사이 널리 퍼져있는 것이 사실이다”고 말했다.‘대선 승복을 다시 생각해야한다’는 설훈 의원이나, ‘대선불복을 두려워해선 안된다’는 정세균 의원, 비슷한 취지의 박지원 의원의 발언 등이 일부 ‘튀는 의원’들만의 생각은 아니라는게 그의 설명이다.
이 관계자는 그러나 “대선판을 깨자는 것은 아니다. 대통령의 사과와 재발방지를 요구하는데 이마저도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고 청와대를 비난했다. 민주당은 황교안 법무부장관, 남재준 국정원장, 조영곤 서울중앙지검장의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
비공식 석상에서의 민주당 의원들 반응은 더 격앙돼 있다. 당초 예상보다 큰 ‘100만표 차’의 대선 결과에 ‘승복’을 주장했던 의원들도 국가정보원 댓글 ‘5만5000건’이란 검찰의 공소장 변경 방침이 확인된 뒤엔 ‘선거 결과가 달라질 수도 있었다’는 얘기를 공공연히 꺼낸다. 한 의원은 “박근혜 대통령은 ‘댓글 때문에 당선됐겠냐’고 했지만, 따져보면 ‘댓글이 없었다면 문재인이 당선될 수 있었다’는 말도 된다”고 주장했다.
중도하차한 국내외 대통령들의 이름도 자주 거론된다. 서영교 의원은 “조봉암 선생을 탄압했던 이승만은 결국 타의에 의해 물러나게 됐다”고 말했고, 또다른 의원은 “박 대통령이 지금처럼 무리수를 둔다면 ‘닉슨의 길’을 갈 수도 있다”고 말했다.
다만 민주당 지도부에선 ‘신중론’이 여전히 다수다. 민병두 전략홍보본부장은 “코미디언이 먼저 웃으면 웃기지 않게된다. 분노도 마찬가지다. 대중의 분노를 끓어오르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국정원에 이어 군까지 대선에 개입한 것은 전 정권의 일이더라도, ‘윤석열 파동’은 박근혜 정권 하에서 벌어지는 사안이니 이에 대한 책임은 분명히 묻겠다는 전략이다.
여론의 향배를 확인할 ‘1차 분수령’은 오는 26일 서울역 앞에서 열리는 ‘국정원 시국회의’가 될 전망이다. 김한길 대표는 중국에서 열리는 국감 일정 때문에 이날 집회에 참여치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2차 분수령’은 30일 치러지는 보궐선거가 될 전망이다. 민주당은 포항과 경기 화성갑 두곳의 선거가 쉽지 않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국감 기간 불거진 군의 선거개입 의혹과 ‘윤석열 파동’에 일말의 기대를 걸고 있다. 노웅래 비서실장은 “쉽진 않지만 바닥 민심의 변화가 있다. 위협도 성과”라고 설명했다.
이런 전략의 연장 선상에서 민주당은 국정원 댓글 사건을 수사중인 특별수사팀의 수사결과 발표와 법원의 최종 판단에 ‘외압’을 막는데 당력을 집중하겠다는 전략이다.
홍석희ㆍ이정아 기자 hong@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