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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른손엔 예산심사권, 왼손엔 모금함…
국회 예산심사의 계절…잇따라 열리는 의원 출판기념회
의원들은 합법적 모금위해 책 펴내고
출판사는 판로보장된 의원들 책 팔고
이익집단은 ‘미래보험용’으로 책 사고…




# 국회에 ‘예산심사의 계절’이 임박한 지난 4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민주당 간사 최재천 의원의 출판기념회가 열렸다. ‘한 손엔 예산심사권’을, ‘다른 손엔 모금함’을 합법적인 정치인 후원 광경이 연말 국회를 훈훈하게 달구는 이벤트의 서막이다. 국회의원들은 “그럼 돈 많은 사람만 정치하란 얘기냐”면서 출판기념회의 불가피성을 강조한다. ‘한 손’에 쥐어진 ‘예산’이 국민들의 ‘피땀’이란 사실은 잊은 투다.

# 세간의 눈치가 보일 법한 출판기념회에 국정감사 내내 ‘피터지게 싸우던’ 여야가 둘레둘레 모였다. 여당에선 황우여ㆍ정몽준ㆍ이군현ㆍ권성동ㆍ김희정 의원 등 핵심들이, 야권에서도 김한길ㆍ전병헌ㆍ안철수 의원 등 80여명이 자리를 빼곡히 메워 행사의 무게감을 천근만근으로 올렸다. 현오석 경제부총리, 황교안 법무부 장관, 류길재 통일부 장관 등 정부 요직들도 왔다. 예결특위 야당 간사의 ‘힘’이다. 힘의 배경은 ‘예산’이다.

자신의 책 소개를 위해 단상에 오른 최 의원은 법정 스님의 ‘말빚’이란 단어를 언급하며 “출판기념회라는 정치행사를 벌이는 것이 또 다른 정치적인 빚을 짓게 되는 것 아닌지 걱정이다”고 말했다. 우연찮게도 하필이면 이날은 예결특위가 결산 심의를 시작하는 날이다. 내년 예산을 짜기 위한 ‘첫 삽’을 뜨는 날과 예결특위 야당 간사의 출판기념회가 겹치게 된 것이다. 이 같은 비판을 의식한 듯 최 의원은 “출판기념회 날짜를 잡은 것은 이미 두 달 전”이라고 강조했다.

최 의원이 이날 발간한 책 제목은 ‘여의도 일기 2’. 지난 17대 국회 때 냈던 ‘여의도 일기’ 1편에 이은 속편 성격이다. 내용은 의정활동을 하면서 본인이 느꼈던 그날그날의 감회와 소회를 글로 옮긴 것이다. 최 의원이 개인 블로그에 올린 글을 묶어 인쇄한 것이 이날 출간한 책이다. 말 그대로 ‘일기’를 책으로 낸 것이다.

여의도 정가에서 ‘출판기념회’는 이미 국회의원들의 합법적인 ‘모금 행사’로 전락한 지 오래다. 출판기념회를 하지 않은 의원은 천연기념물이다. 이익집단-출판사-국회의원이 삼위일체가 돼 모두가 ‘승리’하는 행사가 바로 출판기념회다. 출판사는 ‘판로’가 보장된 의원들의 책을 출판하는 ‘땅 짚고 헤엄치기’의 편리한 장사로, 이익집단은 혹여나 아쉬운 소리를 입법부에 해야 할 때에 대비한 ‘보험용’으로 세상에서 가장 비싼 책을 사고, 의원들은 ‘오세훈 법’ 때문에 줄어버린 후원회 모금액을 ‘벌충’할 수 있는 합법적인 정치 후원금 행사가 바로 출판기념회인 것이다.

국회의원들이 의정활동에 꼼꼼히 적어내는 역작(力作)은 그럼 어디로 갈까.

여의도에 소재한 각종 협회 창고엔 노끈조차 풀리지 않은 국회의원들의 ‘자기자랑’ 저서들이 창고에 쌓인 채 먼지만 쌓이고 있다. ‘책값’을 아예 판공비 고정항목으로 책정한 기업들도 여럿이다. 인터넷 중고서점에 국회의원들의 책은 아예 등록조차 되지 못한다는 게 정설이다. 고만고만한 ‘자전 에세이’, 돌고 돌아 ‘부모님 예찬’ 수준의 책들은 깊이도, 재미도, 감동도 없기 때문에 “팔리지 않는다”는 것이 한 인터넷 중고서점 대표의 설명이다.

한편 새누리당 예결특위 간사 김광림 의원 측은 “지금까지도, 그리고 앞으로도 출판기념회를 열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홍석희 기자/h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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