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이 사이버ㆍ경제 방첩 조직을 대폭 강화해 나가기로 했다. 지난 대선과정에 조직적으로 개입했다는 의혹과 함께 ‘국내 정치파트 해체’까지 요구받고 있는 가운데 사이버ㆍ경제 안보 분야를 돌파구로 삼은 것이다. 그러나 국내 정치 개입 문제를 원장 개인의 흠결로 치부하고, 대공수사권을 검ㆍ경에 이양하지 않겠다는 등 기존 기능은 그대로 유지한 채 도리어 국정원의 영향력을 강화하겠다는 뜻으로 읽혀 ‘셀프개혁안’에 손질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국정원은 지난 4일 내곡동 본원에서 열린 국회 정보위원회 업무보고에서 3차장을 ‘과학기술차장’으로 신설하고 미래형 정보활동을 강화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정보융합 조직을 보강하고 민간-정부 간 협업 활성화에 나설 뜻도 더했다.
이에 따른 실천 방안으로 외국 자본의 금융질서 교란 행위나 외국계 투신사의 펀드 불법 운용에 대해서 적극 대처할 방침이다. 앞서 올해 37건 75명의 경제침탈 행위를 적발해 의법조치한 사실도 밝혔다.
북한의 사이버전 능력을 강조하며 새로운 안보 위협에 대처하기 위한 민ㆍ관ㆍ군 사이버 위기대응 통합 훈련 실시계획도 밝혔다. 정부 공공기관 전산망 실시간 보안 관제 네트워크의 안정성을 점검하고, 악성 배너 탐지시스템을 구축하는 것도 계획 중 하나다.
초국가적 범죄 위협에 대한 대처 방안도 공고히 하기로 했다. 앞서 신분세탁을 통해 난민신청을 한 탈레반 출신 범죄자를 검거하는가 하면 레바논의 무장테러단체 헤즈볼라의 국내 거점 확보 시도도 적발했고, 중국 흑사회ㆍ일본 야쿠자 등 외국인 조직범죄에 대한 정보활동으로 올해 총 83건, 360명의 초국가적 범죄를 색출한 실적도 보고했다.
국정원이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자체 개혁안을 마련할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국내 정치 파트 개혁 문제에 대해선 별다른 방안을 내놓지 않아 논란이 예상된다. 더욱이 남재준 원장은 국내 정치개입 논란에 대해 “국정원법의 문제라기보다 원장 개인 의지의 문제”라며 원세훈 전 원장의 흠결임을 지적하며 “본인은 정치개입에 아무런 관심이 없고 그럴 생각도 없다”고 밝혀 기존 시스템을 유지할 뜻을 시사했다.
이는 기존의 국정원 기능은 고스란히 유지한 채 금융시장 감독 등 새로운 기능을 추가 확대하겠다는 뜻으로 읽히는 상황이다. 그러나 국정원이 국군 사이버사령부의 예산편성권과 회계감사권한을 가지며 협업 이상의 지휘감독 체제를 이끈 것으로 지적된 것처럼 다른 금융감독기관에 대한 영향력 행사도 우려되는 실정이다. 한편 이들 해당 직무 범위를 국정원법 3조에서 규정한 ‘북한’, ‘반역’, ‘대테러’에 포괄적 개념으로 포함시켜 법 개정을 우회할 것인지도 관심을 모은다.
백웅기 기자/kgungi@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