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임금 범위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정기ㆍ고정ㆍ일률적 상여금은 지급 주기가 한 달이 넘더라도 통상임금으로 봐야 한다는 게 그 요지다. 통상임금은 노사 분쟁의 핵심 쟁점이었다. 그 범위를 어떻게 정하느냐에 따라 연장수당과 야근수당 등에 차이가 많이 난다. 특히 퇴직금 산정의 기준이 된다는 점에서 노사가 한 치의 양보도 없이 팽팽하게 맞서왔다. 관련 소송이 160여건에 이르는 것만 봐도 사안이 얼마나 첨예한지 알 수 있다. 하지만 사법부는 일단 노동계의 손을 들어줬다.
통상임금 기준이 명확해졌지만 문제는 지금부터다. 판결의 파장과 후유증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당장 산업계는 ‘임금 폭탄’이 발등에 떨어져 비상이 걸렸다. 재계는 이번 판결로 기업들이 추가 부담해야 할 임금이 13조원을 훨씬 넘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다만 추산일 뿐 그 끝이 어딘지 가늠이 되지 않을 정도다. 자금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은 특히 치명적이다. 10곳 가운데 1곳은 아예 문을 닫게 생겼다는 말이 벌써 나돌고 있다. 임금 부담 때문에 신규 인력 채용을 줄이거나 중단한다는 기업들도 상당수다. 그렇지 않아도 부족한 일자리가 더욱 줄어들 판이다.
무엇보다 기업할 의욕이 위축되는 건 아닌지 걱정이다. 설령 자금 여유가 있는 대기업이라도 많게는 조 단위의 추가 비용이 발생하면 연구ㆍ개발 비용 등을 상대적으로 줄일 수밖에 없다. 예정했던 투자 계획도 보류해야 할지도 모른다. 심한 경우 사업장을 해외로 이전하는 경우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 같은 충격과 후폭풍을 최소화하는 게 시급하다. 재계와 노동계, 그리고 정부가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모아야 한다. 차제에 임금 시스템을 획기적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 따지고 보면 재계의 임금 폭탄은 스스로 초래한 면이 없지 않다. 기본급을 최소화하고 장시간 노동에 대한 수당을 확대해 임금 부담을 줄이는 꼼수를 부린 것은 사실이다. 그러다보니 근로자는 더 많은 임금을 받기 위해 가능한 한 시간을 끌며 일을 하고, 기업은 소액 수당으로 맞서는 악순환이 계속됐던 것이다. 우리 노동생산성이 주요 선진국의 절반에 지나지 않는 것은 이런 왜곡된 임금 구조와 무관치 않다. 기본급을 늘리고 수당을 대폭 줄여 시간외 근로 발생을 최대한 억제할 필요가 있다.
이번 판결은 노사 모두에 위기이자 기회다. 서로 한 발씩 양보해 대타협을 이끌어내면 생산성 향상과 경쟁력 제고의 호기가 될 수 있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얼마든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