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인인증서 없이 인터넷쇼핑’ ‘뷔페 빵 거리제한 폐지’ ‘푸드 트럭 개조 허용’ ‘떡 직접 배달 가능’ ‘학교 주변에도 관광 호텔 설립 검토’ ….
각 부처가 경쟁적으로 쏟아내는 규제 풀기가 연일 봇물이다. 마치 전쟁이라도 치르는 듯한 모습이다. 하긴 대통령이 직접 나서 ‘쳐부숴야 할 원수’이자 ‘암 덩어리’로 규정하고 끝장을 보자며 벼르니 공무원들이 움직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역대 정권이 규제개혁을 시도했으나 한결같이 실패했다. 하지만 이번엔 달라 보인다. 지금까지의 분위기는 그렇다.
풀긴 풀어야 한다. 공장 하나 짓는데 도장 수백개가 필요하고, 현실과 동떨어진 갈라파고스 규제가 지뢰처럼 도사리고 있는 한 투자도, 일자리도 결코 늘어날 수 없다. 20년, 30년 전에 만들어진 케케묵은 제도가 국민 생활과 기업 활동에 불편을 준다면 없애는 게 맞다. 규제만 잘 풀어도 일자리가 20만개가 생긴다니 대통령이 팔을 걷어붙일 만하다.
그런데 이상하다. 정부는 푸느라고 법석인데 이해 당사자들 반응이 영 시원치 않다. 온통 헷갈리는 것 투성이란다. 당일 떡 직접 배달을 허용한다는 것만 해도 ‘떡 장사 수십년에 처음 듣는 이야기’라며 코웃음이다. 직접 배달해야지 퀵서비스를 이용하면 안 된다? 정책 당국은 떡이나 한 접시 사 먹어보고 하는 소린지 모르겠다. 그러면서 인터넷 떡 주문 배달은 2, 3일 말미가 있다. 도통 앞뒤가 맞지 않는다.
이런 예를 들자면 한도 끝도 없다. 푸드 트럭 개조를 합법화하겠다지만 그 범위가 모호하다. 청소년 유해 시설만 없으면 학교 옆 관광호텔 신축을 허용한다는데, 어떤 업태가 유해하고 무해한 건지 가이드라인이 없다. 그나마 지방자치단체들은 중앙정부 말을 듣지도 않는다. 공인인증서를 없앤다지만 보안문제를 해결할 대체안은 마련되지 않은 상태다. 이렇게 우왕좌왕하며 시간이 지나다보면 흐지부지되기 십상이다. 과거에도 그랬다. 노회한 공무원들은 경험측으로 이미 알고 있는지 모른다. 폭풍우가 잦아들기만 기다리면 된다는 것을….
규제라는 암덩어리는 일방적으로 몰아붙인다고 해소되지 않는다. 긴 호흡으로 가야 효과가 있다. 우선 민간이 주도하는 규제개혁 기구를 만들어야 한다. 여기에 공무원이 끼면 죽도 밥도 안 된다. 장담컨대 관료들의 손에 일단 맡겨지면 규제 숫자는 줄어들지 몰라도 본질은 절대 개선되지 않는다. 규제는 공무원의 존재 이유이자 밥그릇이기 때문이다.
민간 규제개혁 기구가 먼저 해야 할 일은 어떤 규제가 착하고 나쁜지를 가리는 것이다. 시장의 기본 질서 유지에 꼭 필요한 좋은 규제는 보완하고 살려나가야 한다. 특정집단의 이해를 배제하고 객관적이고 상식적으로 판단하면 어떤 게 좋고 나쁜지 자연스럽게 기준이 정리된다. 규제를 없애자는 게 아니라 합리화하자는 것이다. 그렇게 가려진 나쁜규제는 시간을 두고 순차적으로 풀어나가는 방식이 돼야 한다.
또 하나. ‘규제 공장’ 정치권의 협력이 절대 요구된다. 지난해 국회에 상정된 법률안 가운데 95%가 의원입법이다. 결국 그 많은 규제는 정치권이 만들어낸 셈이다. 법 하나에 규제가 하나씩 달라붙는다. 정치권은 입법 남발을 자제해야 할 것이다.
정재욱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