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홍원 국무총리가 세월호 침몰사고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했다. 참사 초기 정부의 졸속 대응과 구조작업 과정의 혼선을 감안하면 당연한 일이다. 국민의 안전을 지켜야할 정부가 보여준 무능의 극치는 정 총리 뿐 아니라 내각 총 사퇴도 부족하다는 분위기다. 그러나 지금은 수색·구조 작업이 한창 진행 중이다. 아직 어둡고 차가운 바닷속에 남은 100명이 넘는 학생들의 생사조차 모르는 판이 아닌가.
실종자 구조와 수색에 총력을 쏟아야 할 시점에 덜컥 사의 표명부터 한 것은 무책임한 처사다. “전쟁 중에 장군이 도망가는 것과 뭐가 다른가”라고 반문한 실종자 부모의 심정 그대로다. 정 총리는 실종자 가족들 위로차 진도체육관을 찾았다 물 세례를 받았고, 청와대 항의 방문을 막으려다 황급히 피신하는 봉변을 당하기도 했다. 실종자 가족들의 분노와 절규에 응답하려면 마지막 수습작업까지 책임을 다하는 것이 도리다. 한 두 주 후에 사퇴한다고 해서 자리에 연연한다고 책망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정 총리는 사퇴의 변에서 “더 이상 국정운영에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서 결심했다“고 밝혔다. 세월호 참사 이후 박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이 급락하고 있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연일 나오고 있다. 이런 결과는 곧 있을 지방선거에서 여권에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 악화되고 있는 민심을 조금이나마 추스르기 위해 총리가 사퇴하는 것이라면 ‘국면전환용 사퇴’라는 비난을 면키 어렵다.
박 대통령이 정 총리 사의를 받아들이면서도 사표 수리는 사고 수습 이후에 하기로 한 것은 당연한 조치다. 그러나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총리는 사고 수습이후 갈릴 것이고, 다른 각료들도 마찬가지 운명일 수도 있다. 다만 ‘시한부 총리’가 여전히 사고대책본부장으로 있다는 점만 달라졌다. 그렇지않아도 우왕좌왕하는 대책본부에 영(令)마저 상실할 위기다. 현시점의 총리 사퇴가 여러모로 적절치 않았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총체적 부실이 빚은 참사에 희생자 가족과 국민에게 머리를 숙여야 할 최종 책임자는 행정부의 최고 수반인 대통령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아직껏 그 흔한 ‘책임 통감’ 한마디 않고 있다. 실종자 수색과 세월호 인양 등 사고 수습, 그리고 재발방지를 위한 마스터플랜을 제시한 후 진정성있는 사과를 할 것으로 보인다. 이후 제2 조각 수준의 내각 개편, 청와대 외교·안보 라인 교체 등 후속 조치도 잇따를 것이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데 무능한 내각과 청와대 시스템의 개편은 불가피하다.
이번 사고에 정치권도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없다. 특히 야당은 안전행정 감시·감독에 태만했고 ‘관피아’의 적폐를 방치한 공범임을 자각해야 한다. 지금 어려움에 처한 여권을 상대로 책임론을 제기하고 싶은 유혹을 참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정치공학적 접근을 할 때가 아니다. 한 마음으로 구조작업을 성원하고 ‘안전입법’에 만전을 기해야 할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