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이사회가 며칠 전 길환영 사장의 해임 제청안을 가결했다는 뉴스를 보고 언론학을 공부한 나는 참담함을 떨칠 수 없었다. 그런 결정이 옳았느냐 틀렸느냐가 아니라 거기까지 이르는 과정이 지저분하고 치사하게 비춰졌기 때문이다. 더구나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공영방송에서 이런 일이 되풀이 되고 있어 혹시 만성병으로 굳어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이 겹치기 때문이다.
사건은 세월호 참사 사망자 수와 교통사고 사망자 수를 단순 비교한 전 보도국장의 발언에서 비롯되었다. 이 발언에 대해 사회의 반발이 심해지자 사장은 그의 사퇴를 종용했고 그 과정에서 ‘청와대의 뜻’이라는 얘기를 했다는 것이다. 뉴스 보도의 독립성이 훼손되었고 KBS인사에 외압이 끼어들었다는 점을 내세워 파업이 시작되었고 방송은 파행의 격랑 속으로 빠져 들었다. 뉴스 프로그램은 부실하기 짝이 없었고 연예 오락 부문도 재탕으로 시간 때우기에 급급한 모습을 보였다.
이번 사태가 개탄스러운 일은 사임한 보도국장이 사석에서 한 얘기를 노조가 큰 문제로 ‘뻥튀기’를 한 점이다. 뉴스를 제작할 때 무엇을 어떤 각도에서 어떻게 알릴 것이지를 의논하는 것은 당연한 절차이다. 이 과정에서 여러 가지 의견이 개진되고, 토론하고 수렴하면서 보도 방향이 결정된다. 엉뚱한 얘기나 기발한 아이디어가 튀어 나오기도 하지만 이 단계를 거치면서 뉴스는 다듬어진다. 보도국장의 얘기는 사려 깊지 못했고 가볍기 짝이 없지만 이를 노조에 고자질하고 노조도 큰 문제인양 포장해서 분란을 일으킨 점도 이해하기 힘들다.
또 사장이라는 사람이 보도국장의 사퇴를 종용하면서 청와대를 들먹인 것도 얄팍하기 그지없는 경솔함 그 자체였다. 인사권을 쥔 사장이 할 수 있는 얘기가 그것 뿐 이었을까? 설혹 청와대가 국장 경질을 요구했다고 해도 꼭 그런 방식으로 대응하고 처리 할 수 밖엔 없었는지 아리송하다. 본인에게 곧이곧대로 전하는 것이 사장이 할 수 있는 행동인지 도시 이해가 되질 않는다. 기자회견 형식을 빌려 자초지종을 소상하게 공개한 보도국장의 행동도 분명 상식적이지 않았다.
조직을 운영하다보면 할 수 있는 얘기, 해서는 안 되는 얘기가 숱하게 많다. 이를 다 까발리는 것이 투명성이며 더구나 조직의 일원으로서 할 수 있는 생동인지 묻고 싶다. 더구나 KBS는 지식인들이 모여 문화 상품을 제조하는 곳이 아닌가? 시정잡배보다 못한 척박한 기업 문화, 조직의 속살을 드러낸 것 같아 안타깝기 짝이 없다.
KBS는 누가 뭐라고 해도 이 나라를 움직이는 중요한 기관이다. 아니 우리 삶에 지대한 영향력을 미치는 제도이다. 언론 기관으로서 해야 할 임무를 오롯이 수행해야 하는 것은 두 말 할 나위도 없다. 갈등이나 난관을 어떻게 돌파하고 해결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일도 소홀히 다루어서는 안 된다. 연못을 말려 고기를 잡는다는 말이 생각난다(竭澤而漁). 눈앞의 이익만을 쫓을 뿐 훗날은 생각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수신료의 가치, 감동으로 전 합니다’가 공감을 얻기 위해서는 성숙하고 덕성스러운 회사문화를 만드는 일이 시급한 일이다. 내 몸이 튼튼해야 외부의 간섭이나 개입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은 상식중 상식이 아닌가?
박영상 한양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