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참 대단한 사람이다. 반대편을 제 편으로 바꿔버리는 반전의 외교적 테크닉이 있다. 불과 몇 달 전 만해도 그는 미국 오바마 대통령으로 부터 종군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있어서는 안될 일”,“끔찍하고 쇼킹한 일”이라며 극언에 가까운 수모를 들었다. 북한으로 부터는 “상종할 수 없는 상대”라며 외면당했다. 그러나 불과 몇 달 새 그는 오바마의 지원을 등에 업고 훨훨 날고 있다. 북한과는 수교 얘기까지 나돌 정도다. 정치적 밀당(밀고 당기기)의 결과겠지만, 그는 전후 일본 최고의 책략가임이 분명하다.
아베 총리가 2012년 집권 후 내건 슬로건이 ‘일본의 귀환(Japan is back)’이었다. 일본경제 부활에 대한 강렬한 의지로 이해됐다. 그러나 이제 보니 그 핵심은 우경화, 군국주의의 부활이었다. 그는 자위대 창설 60주년인 7월1일에 ‘집단적 자위권’을 선포해 일본을 ‘전쟁할 수 있는 나라’로 되돌려 놓았다. 이미 올해 국방비 예산은 전년 대비 3% 가까이 증액했다. 향후 5년간 일본에선 어마어마한 군비증강 프로젝트가 이뤄질 참이다. 군산복합기업들은 태평양전쟁 때 그랬던 것 처럼 무기 생산과 수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일본의 귀환’이 가시화되고 있는 것이다.
상대적으로 경제부활 프로젝트인 아베노믹스는 찬밥 신세다. 국민의 70%가 지지했었지만 지금은 절반 이상이 회의적이다. 그가 제시한 ‘3개의 화살(통화, 재정, 규제개혁)’ 중 어느 것 하나 과녁을 뚫지 못했다. 통화와 재정을 통한 경기부양 승부수에도 경상적자는 여전하고 성장률도 제자리다. 하늘에서 뚝 떨어진 엔저 기회도 전혀 못살렸다. 되레 기업 국내투자는 줄고 가계 저축률은 계속 올라만 간다. 기업과 가계가 아베노믹스를 신뢰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마지막 화살인 구조개혁도 별반 다르지 않다. 성과주의 도입, 법인세 인하, 고령화에 대비한 여성 및 외국 인력 활용 등을 내세웠으나 액션 플랜 미비로 이 역시도 과녁을 벗어나고 있다. 외신들은 “1개의 화살이 아니라 1000개의 바늘을 쏘고 있다”고 비웃기 까지 한다.
나라가 경제적으로 허덕일 때 통치자들은 시선을 다른 데로 돌리기 일쑤다. 아베 역시 마찬가지다. 신사 참배에 이어 독도 침탈 야욕, 위안부 사과 거부, 집단자위권 의결, 그리고 최근의 북한 제재 해제까지 하나같이 그렇다. 그 결과 아베의 반한(反韓) 및 우경화 행보는 거의 통제 불능 상태다. 덕분에 동아시아 정치 지형도는 뒤죽박죽이 되어 버렸다. 미국을 등에 업은 일본이 북한을 끌어안고 이에 대응해 한국과 중국이 단단한 연대를 도모하고 있다. 북핵 6자 회담 구도도 완전히 엎어질 판이다.
그러나 아베 정부가 착각하는 게 있다. 영원한 우방도, 영원한 적도 없는 다원화 세계질서가 지배하는 시대다.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려 일본을 이용한다 치더라도 그게 얼마나 오래 갈까. 북한이 얼마나 영악한 집단인데 중국을 외면하고 일본과만 친하려 할까. 이러다간 일본이 외교적으로 집단 따돌림을 당하진 않을까 우려된다. 그래서 야기될 지 모를 ‘아베 웨이’의 돌출행동이 더 걱정된다. 제발 아베 정부가 이성을 되찾았으면 좋겠다.
조진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