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 승 엽(‘악퉁’ 리더 및 보컬 / 글로벌사이버대 겸임교수)
어릴 적 어느 날 가족들과 저녁을 먹으며 TV를 시청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머니가 갑자기 내 눈을 가리는 것이었다. 가려진 눈에 답답해하며 어머니의 손을 치우려던 나에게 어머니는 저런 것은 보는게 아니라며 나를 달랬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머니가 내 눈을 가렸던 이유는 혐오스러운 장면이 TV에 나왔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 동안 대한민국은 경제적으로 많이 발전해 이른 바 선진국 모임이라 하는 OECD에도 가입했다. 그래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밥심으로 사는 국민들의 입맛을 잃지 않게 하기 위해서인지, 근래에는 혐오스러운 장면을 TV에서 거의 볼 수가 없다. 폭력적이거나 선정적인 장면도 줄었고 설사 나오더라도 모자이크 처리해 노출을 최소화 한다. 그래서 지금은 과거 우리 부모님들이 하셨던 ‘손 가리기’는 필요가 없게 되었다.
그런데 얼마 전 저녁 식사를 하면서 TV에서 방영되는 광고 한편을 보고 나의 식감을 순식간에 저하시키는 장면에 상당히 언짢아졌다. 그 광고는 바로 ‘금연광고’였다. 비흡연자인 내 가족들이 왜 저 광고를 봐야하는지? 왜 밥상머리에서 해골을 봐야 하고, 시뻘건 피가 터지는 장면을 내 아이들이 강제로 봐야 되는지?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요즘 정부에서는 금연정책을 열심히 펼치고 있다. 비흡연자 입장에서는 환영할만한 일이긴 하다. 매너 없는 흡연자들도 많이 줄었고, 원치 않는 담배연기를 맡는 일도 상당히 없어졌다. 하지만 이번 ‘금연광고’는 애기가 좀 다르다. 흡연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혐오스러운 장면을 여과 없이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 광고가 과거 TV에서 혐오스럽고,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장면이 그대로 나오던 것과 무엇이 다른지 모르겠다. 흡연과 관련 없는 우리 가족, 해맑은 얼굴로 TV를 시청하는 옆집 아이, 태어날 아이를 생각하며 행복하게 식사하는 아랫집 임산부 등 수많은 사람들에게 시각적, 정신적 폭력을 가하고 있는 셈이다. 더구나 광고에서 표현하고자 하는 뇌졸중 발병의 주요 원인이 고혈압이나 비만 등에 있음에도 마치 흡연이 모든 원인인 것처럼 국민들에게 잘못된 정보를 전달하면서까지 말이다.
보건당국에서는 비흡연자나 청소년의 흡연에 대비한 예방적 차원이라 항변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교통사고 예방을 위해 끔찍한 사고 장면을 그대로 TV에 내보내야 하는가? 국민들에게 화재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주기 위해 화상을 입은 환자 모습을 그대로 방영해야 하는가? 수술 장면과 폭력장면은 또 어떠한가? 이 모두가 국민들의 건전한 정신 건강을 위해 표현을 자제하거나 방영하더라도 모자이크 처리하지 않는가?
최근 연이은 사건・사고로 인해 우리 국민들은 개개인마다 그 정도는 다르지만 함께 슬퍼하고 아파하며, 정신적으로 많이 지쳤다. 이제는 시간이 흘러 우리 모두가 일상으로 다시 돌아가기 위해 다 같이 노력하고 있는 지금, 국민적 아픔을 치유하고 정신적 피폐함을 어루만져주어야 할 정부가 금연정책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더구나 하필 이 시점에 혐오스러운 광고를 내보내는 것이 과연 올바른 정책적 판단인지 의문이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보건당국은 금연광고에 이어 담뱃갑에 끔찍한 장면이 담긴 사진을 넣는 방안을 추진한다고 한다. 세계적인 추세가 그렇단다. 우리나라 정부의 ‘선진국 따라 하기’는 어제 오늘의 일도 아니지만, 정부 당국자가 문맹률 ‘0’에 가까운 똑똑한 대한민국 국민들을 이성적 판단이 부족한 ‘국민’으로 판단하여 이런 정책을 추진하는 것은 아닌지 마음 한편에 씁쓸한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