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수경제 심각한 디플레 가능성비관적 기대 유도…악순환 초래자기실현 예언 함정 벗어나려면 재정·통화 확장적 정책조합 시급
세월호 충격으로 촉발된 내수 침체가 좀처럼 회복의 모멘텀을 찾지 못하고 있다. 민간소비 위축에서 시작된 충격은 광공업 및 서비스 생산 감소로 일파만파 번지고 있다. 연초 평균 70만명에 육박하던 신규 취업자수도 40만명으로 주저앉았다. 특히 세월호 충격이 영세 자영업자에게 집중되면서 지난 5월과 6월에는 이들의 수가 평균 4만4000명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세월호 충격으로 생업을 잃은 것이다. 당초 3개월 정도면 그칠 것으로 예상했던 것이 생산, 투자, 그리고 고용에까지 영향이 확산되면서 자칫하면 하반기 경제에도 그늘이 드리울 것 같아 걱정스럽다.사실 우리 경제의 성장률은 여전히 전년동기대비 3%대 중반의 견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선진국 경기 부진에도 불구하고 수출이 선방하고 있고, 경상수지도 사상 최대의 흑자행진을 지속하고 있다. 문제는 그럴 듯해 보이는 외견과는 다르게 내수 경제의 실상은 심각한 디플레이션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는 점이다. 소비는 여전히 2%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설비투자 역시 이렇다 할 활력이 보이지 않는다. 작년까지 내수를 이끌어주던 건설투자마저 급락하고 있는 형국이다. 수출 증가율이 그리 높지 않은데 경상수지가 사상최대를 기록한 것은 내수 부진에 따른 수입수요 감소가 그 원인이다. 전형적인 수출과 내수의 괴리 현상이고, 지표 경기와 체감 경기의 괴리 현상이다.
이대로 놔두면 내수는 구조적 디플레이션 함정에 빠질 수도 있다. 디플레이션은 인플레이션보다 훨씬 위험하다. 인플레이션은 물가 상승의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경기 자체는 호황 국면이다. 또한 물가가 너무 오를 경우에는 금리를 인상하고 통화를 조이면 가라앉는다. 디플레이션은 다르다. 디플레이션이 위험한 것은 사람들의 기억에 남아 미래에 대한 비관적 기대를 유도한다는 점이다. 이런 비관론은 종종 ‘자기실현예언(self-fulfilling prophecy)’의 함정으로 국민적 정서를 몰아가고, ‘소비 위축-투자 감소-소득 감소-소비 위축’으로 연결되는 악순환을 초래한다. 웬만한 정책으로는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 내기 쉽지 않다. 사실 어떤 정책도 백약이 무효인 상황에 빠질 가능성이 훨씬 높다. 이 경우 경제는 장기 디플레이션으로 돌입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일본이 20년 이상 고생하고 있는 원인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내수 침체의 장기화가 비관론 확산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막는 일이다. 한 번 디플레이션 구조가 고착화하면 빠져나오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현 경제팀에게 다음의 몇 가지를 주문하고자 한다.
첫째, 재정과 통화의 확장적 정책조합이 시급하다. 특히 내수 디플레이션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서는 재정과 통화의 정책조합(policy mix)이 필수적이다. 그런 의미에서 정부가 발표한 경제정책방향은 매우 긍정적이다. 이제는 금리 인하를 심각하게 고려해봐야 할 때다. 가계부채에 대한 고민이 깊을 수밖에 없는 점은 충분히 인정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의 기준 금리가 적정 금리보다 다소 높아 보인다는 점도 따져봐야 할 것이다.
둘째, 부동산 시장 발 복합불황에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분양가 상한제, 재건축부담금 등 각종 규제를 폐지하는 등 부동산 시장 활성화 조치를 다각도로 펼쳐나가야 한다. 젊은층의 주택 수요기반을 확충하기 위해 공유형 모기지를 확대 시행하고, 부모의 자녀 주택매입 지원시 상속증여세를 경감해주는 대책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단 양질의 공공임대주택 공급도 동시에 진행돼야 한다.
마지막으로, ‘경제혁신 3개년 계획’도 다시 일관되게 추진할 필요가 있다. 시간제 일자리 창출 등 유효수요 확대와 함께 각종 규제개혁 등을 통한 공급 능력 확충 노력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 이를 통해서 성장잠재력을 다시 4%대 이상으로 끌어올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