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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화문칼럼-김상복] ‘조용한 혁명가’들이 만드는 회복사회
김상복 한국코치협동조합 대표

일터나 생활터에서 완전히 잘못됐다고 판단되는 관행이나 가정, 가치에 대항하고 싶지만 복잡하고 힘들어 외면하고 속으로 갈등하는 껄끄러운 딜레마에 빠지는 경우가 있다. 큰 목소리로 말하면 타인의 분노를 사게 될지도 모르고 반대로 침묵하면 그것이 자기 내부에 분노로 쌓일 것이다. 어디서든 변화를 추구하는 사람들은 이런 갈등을 겪는다.

미 스탠퍼드 대학의 데보라 마이어슨 교수는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서 “변화를 추구하는 리더들이라면 조직 내에서 ‘조용한 혁명가’를 찾으라”고 조언한다. 변화의 딜레마로 갈등하는 조용한 혁명가 중 한 부류는 변화 전략의 분포에서 가장 온건한 형태이긴 하나 타인의 예상을 조용히 무너뜨리는 와해성 자기표현(disruptive self-expression)으로 파문을 일으키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의 삶의 가치에 충실하며 다양한 방식으로 특별히 조용하게 행동하기 때문에 선입견에 빠진 리더들은 찾기 어렵다.

이들은 항의를 나타내는 행동이든 자기 가치의 개인적인 표출이든 언어, 복장, 사무실 자기 공간 장식에서 조직분위기에 변화를 주려 한다. 다른 사람들은 일단 표현을 알아차리고 나면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하고 용기를 내 직접 똑같은 일을 시도할 수도 있다. 관습을 거스르는 말이나 행동을 하거나 이를 반복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문화적 영향력이 조직 내에서 커진다. 작은 형태의 ‘와해성 자기표현’이라도 매우 강력할 수 있다. 그런 행동을 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조용하고 똑똑 떨어지는 물처럼 미미하지만 시간이 흘러 쌓이면 화강암도 침식시키는 변화 에너지가 될 수 있다. 조직 밑에서 물처럼 흐르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보다 큰 시각에서 사회문화 현상으로 이미 예측됐다. 미 정치학자 로널드 잉글하트의 ‘조용한 혁명(1977)’이 그것이다. 물질적 가치를 중시하며 이윤추구적 사고, 권위주의 사회에서 점진적으로 주관적 행복, 자아실현, 정치적 참여 등 탈물질적인 가치를 지향하는 문화적 변동을 ‘조용한 혁명’이라 부른다. 개인의 삶에서도 주관적인 가치행동이나 삶의 질을 중시하며 정신과 마음, 생각과 행동의 내적 일치를 무엇보다 중시한다. 작은 행동에 집중하고 나만의 태도와 행동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이런 생활 중 몇 가지를 소개한다.

오래전부터 떠나갈 사람들은 다 가고 노인들만 사는 어느 산촌 이야기다. 해체된 가족관계, 자기 삶에 허덕이는 도시로 간 자녀들, 찾아오기에는 너무 바쁜 손자. 이젠 마을마저 없어질 판이다. 그러나 시골에 친정이 없는 주부들은 이들과 결연을 맺고 친정엄마 손길 같은 찬거리를 주기적으로 배송받는다. 이런 직거래만으로도 마을은 가구당 소득이 백만원이 넘자 산촌에 온기가 돌고 있다.

남들은 몸도 지치고 마음이 바쁜 퇴근길이지만 저녁 8시만 되면 자기 근무지에서 가까운 지하철 역으로 달려가 세월호 서명을 위한 1인 피켓을 들고 있는 중년이 있다. 누가 시킨 일도 아니지만 서명 받기를 하루도 거르지 않는다. 그는 눈길과 손길로 동참하며 마음주는 사람들에게서 힘을 얻지만, 아직도 정신 못 차린다고 노골적으로 질타하는 사람들에게도 미소를 잃지 않는다. 왜냐면 공부를 마친 후 웃으며 역으로 달려오는 중3 아들 모습이 먼발치에 보이기 때문이다.

한 달에 한 번 외식을 위해 약속한 식당에 가족이 모이게 되면 함께 아이들을 초대하는 가족이 있다. 지역 복지관에서 자매결연 맺어 준 결손 가족의 아이들이다. 오래전 알 수 없는 이유로 엄마는 집을 나가 할머니와 사는 세 자매는 한 달에 한 번이지만 이 가족이 초대하는 저녁 식사를 함께한다. 잠시나마 눈 맞추며 이야기를 들어주는 온기를 느끼며 즐긴다.

이런 삶을 사는 사람들은 앞에 언급한 마이어슨 교수의 분류에 따르면 변화에 필요한 와해성 자기표현을 한 단계 넘어선 두 번째 종류의 사람들이다. 생활터에서 자기 삶의 방식을 다양하게 구현하는 ‘기회포착 방식’의 조용한 혁명가다. 이들은 일터에서든 생활터에서든 자기 가치 증식을 통해 변화의 흐름을 증폭하고자 한다. 마치 시간이 흐르면서 오랜 기준으로부터 완전히 새로운 음악적 경험을 추구하는 재즈 음악가와 같이 삶을 생산한다. 우리는 이런 조용한 혁명가에게서 회복사회의 징후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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