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학을 앞둔 어느 날 후배 교수들과 점심을 같이 했다. 잡담이 끝날 무렵 어느 교수가 ‘형님은 좋은 때 교수를 하셨습니다’하고 한마디를 던진다. 왜냐고 묻지 않아도 행간의 뜻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각 대학이 개혁이니 경쟁이니 하는 목표를 내 세워 교수들을 다그치고 있어서 삶이 피곤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10여 년 전부터 몇몇 신문사들이 자체적으로 만든 지표에 따라 대학을 평가한 후 순위를 이맘때 발표하고 있다. 평가 기준이나 방법의 타당성에 대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순위가 공표되기 때문에 각 대학은 이 발표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실사에 대비해 몇 달 동안 준비를 하기도 한다. 아무튼 미디어의 이런 발표는 대학을, 교수들을 긴장하게 만드는 계기가 된 것은 분명하다.
대학을 긴장하게 만든 다른 요인은 기업이 대학을 인수해서 경영하는 일이다. 굴지의 재벌회사가 대학을 인수하여 ‘최고의 학교’를 만드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 현대적(?)인 경영 기법이 도입되고 효율성과 생산성에 주안점을 두고 투자한 결과 살림살이가 윤택해지고 겉모습도 멋지게 변했다.
사실 그 동안 대학은 관행과 관습을 고집해 왔기 때문에 허술하고 빈 구석이 많았다는 점은 부인하기 힘들다. 따라서 이런 변화나 개혁 요구는 대학 구조나 형식을 바꾸는데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중 두드러지는 것 중 하나가 교수에 대한 업적평가이다. 대학마다 전공마다 조금의 편차는 있으나 대체로 1년에 1편의 논문을 발표하고 연구비를 얻어다 큼지막한 프로젝트를 수행하도록 대학은 요구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학생들 취업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심지어 신입생 모집에도 일조를 해야 하는 일도 생기고 있다. 또 담당 수업 시간도 늘어났고 자질구레한 일도 생겨 교수들의 삶이 빡빡해 진 것은 사실이다. 시간을 재량껏 쓰던 교수의 특권(?)은 움츠러들었다.
얼마 전 서울에 있는 한 대학에서 5년 연속 최하위 등급을 받은 교수 4명을 인사위원회에 회부하기로 결정했다는 것이다. 이들 모두는 정년을 보장받은 사람들인데 인사위원회에 회부되면 견책으로부터 파면까지 징계가 내려지게 된다. 정년 보장을 받은 교수가 업적을 이유로 징계를 받는다면 이는 엄청난 변화의 신호탄이다. ‘교수의 철밥통’은 언제든지 깨질 수 있다는 것을 공표한 것이나 진배없는 결정이다.
대학이 바뀌어야 언표는 토를 달 수 없는 명제가 되었다. 오늘의 대학이 아카데미즘만을 고집하는 상아탑으로 존재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다.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재를 공급하는 기관으로 전락했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다. 그렇다고 해도 대학을 손바닥 뒤집듯 쉽게 바꾸어서는 안 될 일이다. 혁신과 진화를 끊임없이 꾀해야 하지만 긴 호흡을 가지고 찬찬히 해야 한다.
대학은 투자하는 곳이지 자판기처럼 생산물을 쉽게 만들어 내는 곳은 아니기 때문이다. 기업이 어느 분야나 업종에서 성공을 거두었다고 그것을 대학에 그대로 대입한다면 자칫 치사분지(治絲焚之)가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은 공연한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