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파행이 결국 추석을 넘길 모양이다. 지난 1일 올해 정기국회가 문을 열었지만 의사 일정은 여전히 빈칸이다. 한시가 급한 민생법안만 해도 수십개라고 아우성이지만 세월호 특별법에 볼모로 잡혀 한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기껏 본회의를 열어도 비리 혐의로 체포 동의안이 제출된 ‘동료 의원 구하기’만 일사천리로 진행될 뿐이다. 정치력도 없고 무능한데다 얼굴까지 두꺼운 정치판 탓에 이젠 한국호(號)가 골든타임을 놓치고 가라앉을 지경이다.
그러나 한 걸음 물러서 생각해보면 돌파구가 없는 것도 아니다. 세월호법이 꽉 막혀있는 근본 이유는 정치 문제로 변질됐기 때문이다. 정치색을 걷어내고 본래의 자리로 돌려놓으면 협상의 여지도 넓어지고 해법도 나온다.
우선 최대 걸림돌이 되고 있는 수사권과 기소권 주장의 정치적 의도부터 제거하는 게 순서일 듯싶다. 특별법을 통해 세월호 참사의 진상을 규명하자는 데 반대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더욱이 유가족들에게 진상규명은 종교적 신념과도 같다. 생떼같은 자식이 차가운 바닷속에 잠기는 모습을 두 눈 빤히 뜨고 지켜 본 그들이 아닌가. 함께 슬퍼하고 분노했던 국민들도 한치 모자람 없이 진상을 밝히고 책임자를 처벌해야 한다는 데 충분히 동의하고 있다.
하지만 진상조사위원회가 수사권과 기소권을 가져야 한다는 것은 다른 문제다. 그게 아니어도 참사의 실체를 밝힐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진상조사위와 자신들이 원하는 특별검사가 있지 않은가. 박영선 새정치연합 원내대표가 여당과 협상에서 두 번이나 오케이 한 것도 그런 정도면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굳이 수사권과 기소권을 쥐려는 속셈은 따로 있다. 헌법과 법률을 넘어서는 초강력 권한이 주어지면 그 칼날의 끝은 청와대와 박근혜 대통령을 향할 게 뻔하다. 그 순간 세월호 참사는 정권 흔들기의 가장 강력한 수단으로 작용할 것이다.
게다가 다음 총선이 2년도 채 남지 않았다. 진상조사위는 연장 기간을 3개월을 포함하면 최장 1년9개월까지 활동할 수 있다. 총선 일정과 기가막히게 맞아 떨어진다. 세월호 참사를 ‘박근혜 정권 무능’ 탓으로 밀어붙이면 총선 승리는 식은 죽 먹기다. 그 여세를 이듬해 대선까지 몰아 정권을 잡는 것이 시나리오의 완성이다. 그 사이 광우병 사태같은 일이라도 일어나 준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이런 정치적 꼼수를 여권이 모를 턱이 없다. 그러니 피해자가 가해자를 처벌하는 ‘자력구제’ 금지 원칙까지 흔드는 무리수를 두면서 순순히 수사권과 기소권을 내 줄리 만무하다.
이쯤에서 정치권은 서로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이미 서로의 패를 다 읽고 있는 마당에 공연히 시간만 끌 이유는 없다. 먼저 야당과 유가족은 수사권과 기소권 요구를 접어야 한다. 그게 고리를 풀어가는 기본 전제다. 그리고 여권은 진상조사에 최대한 협조를 공개적으로 약속하는 것이다. 박 대통령이 유가족을 만나 자리를 걸고 이에 대한 확답을 줘야 한다. 다만 누구든 또 꼼수를 부리면 국민들이 다음 선거에서 가차없이 응징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