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수현 금융감독원장이 제재심의위원회의 결과를 뒤엎고 KB금융지주 임영록 회장과 이건호 행장에 대해 중징계를 결정했다. 금융지주회사 회장과 행장이 한꺼번에 중징계 통보를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결정 이후 이 행장은 사임 의사를 밝혔고, 임 회장에 대한 사퇴 압박도 커질 것으로 보여 KB금융의 경영공백 사태는 장기화할 수 밖에 없게 됐다.
최 원장은 이번 결정으로 자신이 그동안 수차례 밝혀 왔던 “제재심의 결정을 따르겠다”는 말을 스스로 번복한 꼴이 됐다. 들쭉날쭉하다고 비판받아 온 금융제재의 객관성과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민간 전문가가 참여하는 제재심의 제도를 도입한 취지도 무색하게 됐다. 최 원장은 어떤 형태로든 KB사태를 키운 점을 사과해야 한다.
이번 중징계는 KB 경영진이 자초한 측면이 강하다. 제제심의위 경징계 결정 이후에도 KB 내분을 가라앉히기는커녕 증폭시킨 책임이 크기 때문이다. 지난 5월 전산시스템 교체를 빌미로 불거진 임 회장과 이 행장 간 갈등은 ‘OK목장의 혈투’를 방불케 했다. 각기 다른 줄을 타고 내로온 낙하산 회장-행장이 주도권 싸움을 벌이는 사이에 KB금융은 정기인사를 못할 정도의 경영 공백 상태를 맞았고 내부기강도 엉망이 됐다. 우여곡절 끝에 지난달 21일 제제심의위의 경징계 결정을 받았으나 이후에도 이 행장이 임 회장측 인사 3명을 검찰에 고발하는 등 양측의 갈등은 오히려 노골화한 것이다.
사실 KB금융이 이렇게까지 망가지도록 방치한 원죄는 역대 정부에 있다고 하겠다. 멀쩡한 두 우량은행(국민ㆍ주택)을 합병한 뒤 입맛대로 낙하산을 내려보낸 장본인 아닌가. 낙하산→권력투쟁→도로 낙하산의 악순환이 이어지면서 KB금융은 리딩뱅크에서 그만그만한 은행으로 그 위상이 추락했다. KB금융이 이 지경이 된 것은 금융회사 임원 자리를 전리품처럼 챙겨온 정권과 이를 동조ㆍ방관한 금융당국이 원인을 제공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번 사태를 겪고도 낙하산 인사의 악순환이 초래하는 적폐를 끊지 못한다면 KB금융의 미래는 없다. 차제에 최고경영진 선임절차와 이사회 구성을 포함해 KB금융의 지배구조 자체를 전면적으로 다시 짤 필요가 있다. 금융위와 금감원은 낙하산 인사의 폐해에 뒷북만 칠 게 아니라 주인 없는 금융회사의 바람직한 지배구조에 대한 해법을 서둘러 강구해야 할 것이다. 이제 관치금융의 그림자를 지우고 금융전문가에게 KB금융을 돌려줘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