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회고록이 나오면서 대우 해체의 진실 게임이 재연되고 있다. 이번에는 김 회장이 15년간 가슴에 묻어뒀던 이야기를 격정 토로한 후 벌이는 논란이어서 이전보다 열기가 더 뜨겁다. 한국 현대경제사에 천착해온 신장섭 싱가포르 국립대학 교수와 대화형식으로 출간된 회고록에는 비하인드 스토리도 꽤 있다. 김 회장이 당시 김대중(DJ) 대통령ㆍ신흥관료들과 펼치는 우정과 배신은 기업소설 처럼 흥미롭다.
DJ는 세계경영의 주창자인 김 회장을 ‘경제 대통령’으로 치켜세우고 청와대 경제관련 회의 고정멤버로 참여시키기도 했다. DJ가 결국 IMF의 큰 손인 미국의 압박과 햇볕정책의 파트너로 현대를 낙점하면서 대우를 버리는 카드로 썼다는 점, DJ가 김 회장에게 3~6개월만 나가 있으면 잘 정리해서 8개 계열사를 경영하게 해주겠다고 했으나 끝내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는 점 등이 공개됐다.
재벌의 구조조정을 주도했던 신흥 경제관료와의 갈등으로 대우가 기획해체됐다는 주장도 부각됐다. ‘김우중 장학생’이었던 이헌재 전 금융감독위원장이 정작 김 회장이 절체절명의 위기에 봉착했을 때 숨통을 끊는 악역을 맡게된 점도 아이러니다. 강봉균 전 청와대 경제수석과의 에피소드도 등장한다. 김 회장은 “환율이 1600원까지 치솟았으니 돌멩이도 수출할 수 있는 상황이다. 무역수지 500억 흑자로 환란을 충분히 극복할 수 있으니 수출금융을 정부가 나서서 지원해달라”고 주문한다. 강 수석은 그러나 지금 그럴 때가 아니라고 했다가 면전에서 “거기(청와대) 앉아서 하는 일이 도대체 뭐냐”는 핀잔을 듣는다. 이런 게 쌓여 감정이 악화됐고 마침내 관료들에 의한 기획해체를 불러왔다는 설이다.
국내외에서 통용되는 정사(正史)에는 대우가 무리한 차입경영과 지나친 확장 투자로 빚이 너무 많았고 외환위기가 닥쳤는데도 구조조정에 소극적이었다가 시장의 신뢰를 잃고 망했다고 씌어 있다. 하지만 김 회장과 신교수가 집필한 야사(野史)를 보면 한국경제가 곱씹어 봐야할 대목이 적잖다. 우선 IMF의 이중잣대다. 선진국들은 자신들이 금융위기를 당했을 때에 IMF프로그램을 전혀 적용하지 않았다. 고금리 대신 제로금리를 택했고 돈을 마구 찍어내는 양적완화까지 시행했다. 한국에는 ‘대마불사론은 없다’고 했지만, 미국은 세계최대 자동차 회사(GM)·상업은행(시티)·보험회사(AIG) 등을 경영진조차 바꾸지 않고 돈을 무제한 공급해서 살려냈다. 대우도 이런 방식으로 살아났다면 아프리카와 중앙아시아, 동유럽 시장 선점효과로 한국경제가 새로운 성장엔진을 가동할 수 있었을 것이다.
외환위기 이후 15년이 지난 지금의 시점에서 돌이켜 보면 우리나라가 당시 ‘국가부도’라는 초유의 사태에 직면해 허둥대다 보니 한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실책들이 저질러졌다. 도전적 기업투자를 부실경영과 동일시하는 금융권의 보신주의도 이때 배태되지 않았나 싶다. 은행이 기업 보다는 개인대출에 치중한 결과가 2000년 초 카드대란이다. 부진한기업투자는 일자리부족과 가계소득 저하로 이어졌고 오늘날 가계부채 1000조의 씨앗이 되고 말았다. 이처럼 IMF체제의 부정적 유산은 아직도 유령처럼 우리 사회를 떠돈다. 그래서 대우는 살아있는 반면교사다. 공은 공대로 평가하되 과는 피해야 할 이정표로 삼자.
<요약분> IMF체제의 부정적 유산은 아직도 유령처럼 우리 사회를 떠돈다. 기업투자 부진과 금융권의 보신주의, 가계부채 1000조의 씨앗도 이때 뿌려졌다. 그래서 대우는 살아있는 반면교사다. 공은 공대로 평가하되 과는 피해야 할 이정표로 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