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올해보다 5.7%(20조2000억원) 늘어난 376조원 규모의 내년도 예산안을 확정했다. 국세 수입이 3년째 목표치를 달성하지 못하고 있음에도 증가폭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7년만에 최고치다.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는 복지 수요, 세월호 사건으로 촉발된 안전 수요, 경기부양의 필요성 등을 모두 반영하면서 씀씀이가 커졌다. 특히 복지 예산이 115조5000억원으로 올해보다 8.5%나 급증해 전체 예산대비 30.7%에 달한다. 복지예산 비중이 30%를 넘은 것은 처음이다. 세월호 여파로 안전예산은 14조6000억원이 편성돼 17.9% 증가했다. 박근혜정부의 트레이드 마크인 창조경제 관련 예산도 8조3000억원으로 17.1% 늘었다. 세수가 목표보다 덜 걷히는 판에 지출을 늘리다 보니 내년 재정적자는 33조6000억원에 이른다. 이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2.1%로 유럽발 재정위기 때인 지난 2010년의 -2.4% 이후 가장 나쁜 수준이다. 국가채무도 GDP의 35.7%(570조1000억원)까지 올라갔다.
정부가 이처럼 재정건전성 훼손을 감수하면서까지 확장예산을 짠 것은 재정확대를 경제활력 회복의 마중물로 삼겠다는 강력한 의지로 읽힌다. 2016년 4월 총선까지 이렇다할 전국 단위의 선거가 없는 만큼 사실상 내년을 경제살리기의 골든타임으로 보고 정부 역량을 총동원하겠다는 뜻이다. 경기부진→세입감소→지출축소 이어지는 축소균형의 고리를 단절하고 지출확대→내수활성화ㆍ경제활력→세수증대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면 중기 재정건전성은 자연히 회복될 거라는 믿음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내년 경상성장률(물가상승률 2.0% 반영) 6.1%, 실질 경제성장률 4% 목표치에 도달하면 이런 선순환의 고리가 형성될 것이라는 얘기다.
나라 빚이 다소 늘더라도 경기회복의 골든타임에 집중하겠다는 정부의 방침은 십분 이해한다. 그러나 이런 예측이 어긋나면 돈은 돈대로 쓰고 경기는 경기대로 가라앉는 최악의 사태가 온다.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비상한 각오로 임해야 한다. 경제살리기는 재정확대만으로 되는 것도 아니다. 규제개혁을 통해 기업투자와 일자리창출이 샘솟게 하고 서비스업 활성화로 내수시장에 온기가 돌아야 상승효과가 배가된다. 이제 공은 국회로 넘어갔다. 여야가 하루빨리 국회를 정상화시켜 국민 혈세가 허투루 쓰이는 곳은 없는지 꼼꼼히 따져야 한다. 해마다 반복되는 ‘지각 예산통과’로 나라경제가 마비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함은 물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