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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쉼표> 시항아리
지하철 1호선 시청역 덕수궁 방향 출구쪽에 큼지막한 항아리가 하나 놓여 있다. 언제부터 놓여 있던 건지, 휴지통 혹은 모래주머니 대용인가? 생각이 오가며 지나치려는 순간, 하얀 이름표가 눈길을 사로 잡았다. ‘시 항아리’. 눈이 번쩍 뜨인다. 발길을 되돌려 속을 들여다 본다. 돌돌 말린 종이들이 색색 밴드로 묶여 가지런히 놓여있다. 제비뽑는 심정으로 그 중 하나를 골라 들고 펼쳐본다. ‘인연’이란 정황수 시인의 시다. “잘 나지도 못하고 가진 것도 없지만/난 그대의 사람이고 싶습니다.//운명적인 만남도 추억 쌓기도 없었지만/난 그대의 인연이고 싶습니다.” 마음 한켠이 따뜻해지는 시다. 시항아리는 을지로입구역,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에도 놓여있다. 그러고 보니 도처에 시가 있다. 광화문 문화아이콘 교보문고의 ‘광화문 글판’의 시는 늘 가슴을 촉촉하게 적셔주고, 그 위 하늘을 올려다보게 만든다. 지난 20여년간 광화문을 오가는 이들의 시선을 사로잡은 시들, 이 가을엔 황인숙 시인의 ‘어느 날 갑자기 나무는 말이 없고’가 걸렸다. “어느 날 나무는 말이 없고 생각에 잠기기 시작한다. 하나, 둘 이파리를 떨군다.” 시는 말썽 많은 담뱃갑에도 버젓이 자리잡고 있다. 생활의 촌평 같은 절묘한 시로 인기를 끌고 있는 SNS 시인, 하상욱의 위트 넘치는 시는 애연가들에겐 팍팍한 일상의 감성충전 역할을 톡톡히 할 만하다. “늘 고마운/당신인데//바보처럼/짜증내요”(’알람‘ 중), “평일:월화수목금/주말:토일”(’주말이 짧게 느껴지는 과학적 근거‘증)“알고/보면//다들/딱히”(‘불금’중)


1971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파블로 네루다를 소재로 한 영화 ‘일 포스티노’에는 시에 대한 명언이 흘러나온다. “시란 쓴 사람의 것이 아니라 그 시를 필요로 하는 사람의 것입니다.” 지금은 시의 계절입니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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