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국외 자매결연지 방문차 비행기에 올랐다. 세월호의 아픔이 어떤 신호처럼 켜지면서 여느 때와 다름없는 승무원의 비상시 행동 준칙 안내 방송에 더욱 집중하게 됐다. 그러나 여전히 일부에서는 그 잠시의 안전벨트 매는 것도 귀찮아 투덜댔다. 어떤 이는 아예 방송 내내 이어폰을 꽂은 채 잠을 청하고 있었다. 여전한 안전불감증에 씁쓸했다.
한국은 전 세계에서 시험의 달인을 양성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려서부터 줄곧 짜여진 시험 일정에 따라 기출문제와 예상문제를 정리하는 것이 몸에 배었다. 시험에 대비하는 정석이다. 그러나 안전에 대해서는 어떤가. 대책 없는 관대함이 만연하다. 요즘 아이들 말을 빌리자면 근자감(근거 없는 자신감)이다.
안전에 관한 기출문제가 결코 적지 않다. 이는 예상문제를 추리는 것이 전혀 어렵지 않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이제는 안전에 관한 기출문제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도 돌아볼 필요가 있다. 감추고 외면하기 급급한 모습은 아니었는지, 살아남은 자와 남겨진 자들만의 고통으로 치부하며 망각의 자유를 오용하진 않았는지….
세월호의 아픔이 있기 20년 전, 1994년 10월 21일 아침 여느 때와 다름없이 출근길, 등굣길이던 성수대교가 돌연 무너져 내렸다. 아무도 그 큰 다리의 중간이 그렇게 맥없이 추락할 거라고 생각지 못했다. 이 사고로 32명의 귀중한 생명을 떠나보냈다. 그 중에는 먼 타국에서 외로이 일하던 외국인근로자와 꽃도 피우지 못한 무학여중고생이 있어 안타까움이 더했다.
사고 이후 사회의 부실관행에 대해 경종을 울리는 목소리가 여기저기 터져 나왔다. 안전관리 의식을 높이고 희생된 영령을 추모하기 위해 성수대교 북단에 위령비를 세웠다. 이후 위령비에 관리는 서울시설관리공단에서, 위령비 주변 조경과 주차장 이용은 성동구, 주변 도로는 성동도로사업소가 관할했다. 설상가상으로 도로상황이 변하면서 위령비는 이제 차가 없이는 찾아가기 어려운 지형에 섬처럼 남겨졌다. 방문객을 위한 주차장은 추모와 경건의 장을 불법주차를 막기위해 대형 화분으로 입구와 출구가 봉쇄됐다. 출입을 원할 경우 구청과 사전에 연락을 해야만 개방되는 공간이 됐다. 도로상황은 더 열악하다. 주차장에서 위령비까지 가려면 성수대교 북단 회전 구간을 지나 직진으로 바뀌며 차들이 속도를 높이는 위험천만한 도로를 건너야 한다. 그동안 유족들은 위령비의 이런 상황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대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여러 갈래로 나뉜 관리체계의 무심함이 이들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한 것이 사실이다.
2014년 10월 21일은 성수대교 참사가 일어난 지 꼭 20년이 되는 날이다. 한 해도 빠짐없이 유가족과 무학여고 교직원, 학생들은 위령비를 찾아 추모를 잊지 않는다. 이제 더 이상 그들만의 아픔으로 잊히도록 놔두어서는 안 된다. 지자체 또한 책임과 관할을 들어 숨어서는 안 된다. 유가족들의 슬픔과 아픔을 어루만지고, 지자체로서 이 같은 비극적인 일이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책임 있는 자세를 취해야 한다. 위령제의 참여와 지원, 관리 체계를 일원화하는 등의 노력을 강구해야 한다. 위령비에 쓰인 “아직도 눈먼 자, 여기 통한의 강, 증언의 강 언덕에 와 새 다짐 불지피라”는 추모사처럼 눈뜬 자, 감시자가 돼야 한다.
한나 아렌트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다른 사람의 처지를 생각할 줄 모르는 생각의 무능은 말하기의 무능을 낳고 행동의 무능을 낳는다”고 했다. 마틴 루터 킹 역시 “중요한 일에 대해 침묵하는 날 우리 생명은 저물기 시작한다”고 했다. 성수대교, 삼풍백화점, 최근 세월호까지 현대사를 사는 우리의 책임이 안전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방심과 방관의 그늘에서 이제는 벗어나야 할 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