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로렌스 나이팅게일(1820-1910)은 영국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평생 간호사의 길을 걸었다. 영국, 독일 등지에서 전문교육을 받았고 유럽, 이집트 등지를 견학하며 견문을 넓혔다. 런던 여성병원 간호부장으로 재직하던 1853년 ‘크림전쟁’과 페스트의 참상을 접하고 34명의 간호사를 인솔해 전선으로 가 야전병원장으로 맹활약했다. 부상병들은 그녀를 ‘백의의 천사’로 불렀다.
그녀의 저서 ‘병원에 관한 노트’, ‘간호노트’는 오늘날 간호법이나 간호사 양성의 초석이고, 그녀의 명성을 딴 ‘나이팅게일 선서’는 시대를 초월한 간호사의 좌우명이다. 국제적십자사는 ‘나이팅게일상(賞)’을 제정, 매년 세계 우수 간호사를 선발해 표창한다.
구원의 천사 나이팅게일의 환생인가. 아프리카에서 에볼라에 맞서다 바이러스에 감염돼 목숨이 위태로웠지만 완치되자 말자 다시 ‘죽음의 땅’으로 되돌아간 한 영국인 간호사가 있다. 그 주인공은 29세의 남자 간호사 윌리엄 풀리.
초보 간호사인 풀리는 올해 초 시에라리온으로 6개월 의료봉사활동을 떠났다. 에이즈나 말기 암환자들을 돌보다 귀국할 무렵 인근 지역에서 에볼라가 발생하자 귀국 대신 현장을 택했다. 8명의 간호사가 감염돼 잇따라 숨지면서 의료진이 속속 철수했지만 그는 그 곳을 지켰다.
두려움의 반대는 사랑이라며 풀리가 고군분투하는 사이 ‘국경없는 의사회(MSF)’와 세계보건기구(WHO)의 지원인력이 합류했다. 하지만 풀리 역시 바이러스 감염을 피할 수 없었다. 런던으로 긴급 후송돼 치료제 ‘Z맵’을 투여 받고 열흘 만에 기적같이 완치판정을 받았지만 다시 에볼라 전선을 고집했다. 떠나며 그가 남긴 “죽어가는 이들을 두고 볼 수 없다”는 짧은 한마디에서 나이팅게일의 숭고한 희생과 사랑의 DNA를 본다.
황해창 선임기자/hchwang@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