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Debt)으로 만들어낸 성장은 오래가지 못한다. 우리는 내수부양을 위해 신용카드를 마구 발급하면서 소비를 지탱한 적이 있다. 플라스틱 버블이 꺼지자 카드대란이 일어났다. 거리에는 신용불량자(금융채무 불이행자)가 넘쳐났다. 빚은 빛좋은 개살구였다.
빚더미는 참여정부가 물려받았다. 노무현 정권은 부동산 때려잡기도 같이했는데, 부동산 안정화 대책을 발표할 때마다 부동산 시장이 들썩거렸다. 돈 있는 사람들은 집이나 땅을 사들였고, 돈 없는 사람들은 빚을 내 부동산에 투자했다. 부동산 가격이 떨어지자 하우스푸어가 양산됐다. 결국 양극화만 심화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빚은 우리 사회에 또다시 큰 숙제를 남겼다.
미국의 서브프라임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로 촉발된 글로벌 금융위기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미국은 금융위기 이후 세차례 양적완화를 단행했다. 빚으로 부실을 막은 것이다. 미국은 지난달 양적완화 종료를 선언하며 빚잔치를 끝내려 하고 있다.
종착역은 금리 인상. 돈을 거둬들이자니 글로벌 유동성 위기가 걱정된다. 그렇다고 풀린 돈을 회수하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금리 인상은 시기의 문제일 뿐이다. 전 세계 금융기관들은 서둘러 부채축소에 나서고 있다. 불황이란 얘기다. 글로벌 경제는 빚이 던지는 경고를 받아들이고 있다.
최근의 경제위기는 빚에서 시작됐다. 한국의 부동산 등 가계부채, 미국의 서브프라임모기지, 유로존 재정위기의 국가 부채 등 모든 게 빚이다.
유로존은 재정위기 극복을 위해, 일본은 잃어버린 20년을 되찾기 위해 양적완화에 동참했다. 유로존과 일본의 완화적 통화정책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대량의 유동성 공급을 통해 경제시스템 붕괴를 막는 게 낫다는 판단에서다.
자본주의에서 빚은 필수적이다. 금융이란 이름의 탈을 쓴 빚은 오늘날 자본주의를 더욱 성숙하게 만드는데 커다란 기여를 했다. 하지만 호황이 끝나면 불황이 오게 마련. 금융기관이 부채축소에 나서면 갚을 능력이 있는 가진 자(者)에게는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돈의 양이 줄어들면 누군가는 빚을 갚지 못한다. 서민이 그들이다.
우리나라의 가계부채는 소비를 제약할 정도다. 국가부채는 우리 자녀들에게 큰 짐이 되고 있다. 어려운 기업은 속속 생겨난다. 빚 때문이다.
더욱이 한국은 부채조정이 이뤄지지 않았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미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부채수준은 2007년 206.3%에서 2013년 198.0%로, 영국은 184.3%에서 165.2%로, 독일은 105.3%에서 95.6%로 각각 떨어졌다. 우리나라는 같은 기간 134.9%에서 135.0%로 변화가 없다. 우리나라가 부채 조정 국면에 접어들 경우 경기침체의 골은 더욱 깊게 패일 것이다.
미국은 빚을 갚기 위해 달러화를 찍어내도 된다. 기축통화국이기 때문에 달러화에 대한 수요는 무궁무진하다. 하지만 우리는 다르다. 빚이 우리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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