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가 억압된 공간, 감옥에서의 글쓰기는 비장하다. 옥중 편지글의 백미로 꼽히는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의 저자 신영복이 그러했다. 무기징역형 사상범인 그에게 글쓰기는 스스로를 버티는 힘이고 바깥세상과의 유일한 연결고리였다. 주제를 하나 잡으면 한 달 내내 감방 안에서 면벽 명상을 통해 생각을 거듭하고, 미리 머릿속에서 교정까지 다 봐두었다가, 엽서를 쓰는 날 완성된 문장 형태로 갖고 있던 것을 토해냈다고 한다. 손바닥만한 엽서 속에 한 자 한 자 또박또박 박아 쓴 글씨는 그가 인고해온 힘든 하루 하루였고, 자기성찰의 맑은 거울이었다.
신영복은 감옥에서 보낸 20년을 ‘나의 대학시절’ 이라고 종종 표현한다. 사람과 세상을 보는 눈을 새롭게 키우고, 생생한 역사의식을 길렀으며 봉제ㆍ목공 등 여러 기술 까지 익히며 노동의 가치도 새삼 깨닫게 됐다는 것이다. 그가 20년의 징역살이를 마친 1988년 곧바로 성공회대에서 정치경제학ㆍ한국사상사ㆍ동양철학을 강의할 수 있게 된 것도 감옥에서의 글쓰기 덕분이다. 특히 그가 감옥에서 개발한 서체 ‘어깨동무체’는 독보적이다. 그의 서체와 작품명을 그대로 가져다쓴 소주 ‘처음처럼’은 대박을 터뜨리며 지금껏 애주가들이 즐겨 찾고있다.
얼마전 영어의 몸인 SK그룹 최태원 회장이 ‘새로운 모색, 사회적 기업’을 펴냈다. 여느 때 같으면 대기업의 그저그런 생색내기용 CSR(기업의 사회적 책임) 홍보책자로 받아들였을 게다. 그러나 기자는 ‘옥중출간’ 이라는 데 눈길이 갔다. 옥중경영은 들어봤어도 옥중출간은 이례적이기 때문이다. 신영복 처럼 ‘참회와 성찰’ 의 공간에서 600여일을 보내며 그가 내면 깊숙한 곳에서 길어올린 화두는 ‘사회적 기업’이었다. 마치 부의 집중화를 낳는 자본주의의 폐해를 해소할 방안을 묻는 토마 피케티(‘21세기 자본론’의 저자)의 질문에 나름의 답을 제시한 듯하다. 최 회장은 책에서 빈부격차, 실업 등 자본주의의 그늘을 밝히는데 정부와 비영리조직의 역할은 한계가 있다고 봤다. 대신 공공성과 수익성을 겸비하고 독자적 자생력을 갖춘 사회적 기업을 활성화하는 것이야말로 취약계층의 문제를 해결하는 지속가능한 모델이 될 수 있다고 피력했다. SK그룹의 기틀을 다진 선친 최종현이 고등교육재단을 통해 국가적 손길이 닿지않던 순수 기초학문을 지원했던 나눔의 철학을 시대정신에 맞게 발전적으로 계승할 길을 찾은 것이다.
최태원의 사회적 기업론은 뿌리가 깊다. 5년전 500억원의 자금을 조성하면서 ‘사회적 기업 전도사’로 나선 이래 결손가정 및 저소득층 아이들에게 양질의 도시락을 배달하는 ‘행복도시락’, 사교육비 부담을 덜어주는 ‘행복한 학교’, 사회적기업의 판로를 열어주는 ‘행복나래’ 등 16곳을 운영하면서 현장경험을 쌓았다. 이제는 사회적 기업의 선순환 생태계를 만드는 게 필생의 과업이 됐다. 그에게 뜻하지 않게 뚬뿍 주어진 시간은 선친이 이룩한 ‘수펙스(SUPEX) 경영’ 처럼 사회공헌의 기념비적 철학을 정립할 기회를 줬다. 최 회장은 책에서 사회의 공공선을 가져오는 긍정적 영향을 ‘백색효과’라 명명했다. 크리스천인 최 회장이 고해성사처럼, 신앙고백처럼 쏟아낸 참회록 ‘사회적 기업론’이 일파만파로 퍼져 우리 사회에 백색효과를 불러온다면 그가 저지른 죄값은 벌써 치른 셈이다.
<키워드>감옥에서의 글쓰기는 비장하다. 크리스천인 최 회장이 고해성사처럼, 신앙고백처럼 쏟아낸 참회록 ‘사회적 기업론’이 일파만파로 퍼져 우리 사회에 ‘백색효과’를 불러온다면 그가 저지른 죄값은 벌써 치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