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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스포츠 칼럼-이종덕>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앉은 그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시인 구상의 ‘꽃자리’)

재단법인으로 전환한 세종문화회관의 초대 사장으로 부임하고, 평소 가깝게 지내던 구상 시인을 만날 일이 있었다. 그 자리에서 그는 내게 “세종문화회관으로 가다니, 내가 다 쓸쓸해지네. 어쨌거나 고생 좀 해줘요. 조만간 응원하러 찾아갈 터이니”하며 의미심장한 말을 건넸다. 그리고 6개월쯤 지나 문화유산국민신탁(삼성출판박물관장) 김종규 이사장에게서 액자 하나를 전달받았다. 액자 안에는 구상 선생이 손수 지은 시 한 수가 적혀 있었는데, 바로 그 시가 위에 적은 ‘꽃자리’다.

그 당시 ‘꽃자리’ 액자를 받았을 때에는 좋은 선물이라고만 느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이 시를 들여다보면 볼수록 구상 선생이 필자에게 전하는 뜻을 이해하고, 그 깊은 마음에 고개가 절로 숙여졌다.

당시 세종문화회관은 척박한 주변 환경과 정부의 중요한 행사가 열리는 곳이라는 권위적인 이미지를 가진 공연장이었기에, 민영화 이후 첫 사장으로 부임한 내가 세종문화회관을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새롭게 만들어야했다. 예술의전당 때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방향으로 이곳을 쇄신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내가 선택한 길이었지만 험난한 산을 오르내리듯 몸과 마음을 단련하며, 늘 새로운 정신으로 무장해야 했다.

이런 상황에서 구상 선생이 말없이 건네준 ‘꽃자리’는 크나큰 위로이자 격려였고, 내 마음을 어루만져주었다. 내가 앉은 자리가 꽃자리라는 그의 위로와 그 자리가 가시방석이라도 꽃자리로 만들라는 그의 응원이 모두 담긴 이 시 한 수가 내 마음을 다독여주는 유일한 벗이었다.

더욱이 ‘꽃자리’ 액자를 마련하면서 필자를 위로하고 격려하려던 구상 선생의 마음의 무게를 생각하니 절로 고개가 숙여지고, 진하게 번지는 고마움을 어찌 표현해야할지 모를 정도였다.

‘꽃자리’의 참뜻을 알게 된 뒤로는 마음이 흐트러지거나 생각이 복잡해지면 이 시 한 수를 보고, 마음을 담금질하며 시간을 지내올 수 있었다. 그렇게 ‘꽃자리’는 내 인생과 함께 내 마음에 새겨졌다.

그 이후 ‘꽃자리’는 세종문화회관을 거쳐 성남아트센터, 충무아트홀로 자리를 옮기는 동안 늘 내 집무실에 걸려, 내 마음을 다잡아주는 중심추가 되고 있다. 그동안 나를 거쳐간 직원들 가운데 ‘꽃자리’에 담긴 이야기를 들어보지 않은 이가 없을 정도다.

차가운 공기에 따뜻함이 익숙해지고, 사람이 그리워지는 계절이 돌아왔다. 마음에 있는 누군가가 생각나고, 문득 보고 싶어지는 계절이다. 내가 ‘꽃자리’를 받은 것도 11월이었다. 그래서인지 해마다 이맘때쯤이면 구상 선생이 생각난다.

높은 하늘 그리고 흩어진 낙엽이 거리를 가득 메우며, 울긋불긋 나의 마음을 물들인다. 물들여진 마음으로 차가운 밤공기를 들이쉬면 구상 선생의 얼굴이 떠오르고, 내뱉는 숨에는 그가 나를 생각한 마음이 떠오른다. 인연을 맺은 30년 세월의 흐름에도 흐려지지 않은 그의 마음이 어느 때보다 그리워진다. 그리운 이를 마음껏 그리워해 본 적이 언제였던가. 오늘 이 계절을 벗 삼아 마음껏 그를 그리워해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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