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13일 혹한 속에 치러졌다. 지난해에 비해 대체로 쉽게 출제됐다는 게 일선 교사와 입시 전문가들의 평가다. 수능 출제위원장을 맡은 양호환 서울대 교수 역시 ‘쉬운 수능’에 초점을 맞췄다고 기본 방향을 설명했다. 평소 학교 수업만 충실히 받으면 누구나 해결할 수 있는 기본적 문제를 중심으로 출제했다는 것이다. 사교육을 억제해 학부모 부담을 줄여준다는 게 그 이유다.
사교육 문제는 수능을 쉽게 낸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오히려 변별력이 떨어지는 데 따른 혼란과 부작용만 커질 뿐이다. ‘물 수능’ 논란은 매년 입시 때마다 제기됐고, 올해도 다르지 않아 보인다. 입시 전문기관들은 이번 수능의 수학B와 영어 1등급 예상 커트라인을 99점과 98점으로 잡았다. 일부에선 아예 100점으로 추정하기도 했다. 한 문제만 틀려도 2등급으로 미끄러질 수 있다는 얘기다. 이쯤이면 학업 능력을 평가하는 게 아니라 누가 실수를 하지 않느냐는 경연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험은 아무리 쉬워도 능력 차이를 확인할 수 있어야 의미가 있다. 이런 수능에 학생들은 목숨을 걸고 있다니 딱한 일이다.
문제의 본질은 수능 개선이 아니라 대학 입시제도 개혁이다. 변별력 없는 수능성적 1,2점을 사이에 두고 대학과 학과를 서열화하고 그 점수에 맞춰 대학에 진학하는 획일적인 입시는 끝내야 한다. 이런 방식으로 대학 입시를 치르다간 망국적 사교육도, 글로벌 시대가 요구하는 창의적 인재 육성도 요원하다. 수능의 기능을 대입 자격고사 정도로 축소할 필요가 있다. 말 그대로 수학능력을 측정하는 보조적 기능 정도면 충분하다. 그리고 각 대학은 수능 점수를 참고해 자신들의 인재 육성 방침에 따라 자율적으로 신입생을 선발하면 된다. 그게 대학을 특화하고 사교육 부담 경감에도 효과적일 것이다.
무엇보다 세계 최고 수준인 대학 진학률을 확 낮춰야 한다. 학업 능력과 적성에 대한 진지한 고려 없는 ‘묻지마 진학’은 자신은 물론 국가와 사회에도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청년실업이 사회 문제가 되고 있는 것도 대학 과잉에 따른 학력 인플레와 무관치 않다. 미국 뉴욕시장을 지낸 억만장자 마이클 블룸버그가 “자녀를 대학에 보낼 것이 아니라 배관공이 되도록 하는 것이 더 나을 수 있다”고 한 발언이 주목된다. 틀린 말이 아니다. 다만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기술과 능력이 있으면 중산층 이상의 생활이 가능한 사회가 돼야 한다는 게 그 전제다. 수능과 대입 제도 개혁은 한국의 미래가 달린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