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예산안조정소위가 본격 가동에 들어가면서 회의장 주변은 연일 북새통이라고 한다. 각 부처 예산담당 공무원은 물론 각종 기관 단체 관계자, 심지어 증액안을 밀어넣은 지역구 의원실에서도 몰려들어 발 디딜 틈조차 없다는 것이다. 적어도 이런 모습은 항목별 예산규모가 확정되는 내주까지 계속될 전망이다. 여야 정치권이 “쪽지와 밀실 예산은 없다”며 공정한 예산 심의를 천명했지만 결국 올해도 달라진 건 하나 없다. 예산안은 늦어도 내달 1일까지 예결위를 통과해야 한다. 2주일도 채 남지않았다. 게다가 여야간 힘겨루기로 고성에 막말까지 오간다니 그나마 파행이나 겪지 않으면 다행인 판이다. 이렇게 해서는 심의가 제대로 이뤄질리 만무하다.
해마다 똑 같은 모습이 되풀이되고 있는 건 예산심의 제도 자체에 문제가 많다는 증거다. 우선 심의 시스템이 너무 비효율적이다. 정부 예산안이 국회에 상정되면 각 상임위가 예비심사를 하게 된다. 그런데 그 단계가 나라 살림을 얼마나 알뜰하게 짰는지 살피기 보다는 지역구 등 예산을 늘리는 창구가 돼 버렸다. 올해만 해도 국회 각 상임위가 예비심사를 거쳐 예결위에 넘긴 증액 예산이 무려 13조5690억원이다. 이를 예결위, 특히 예산안조정소위가 칼질을 하다보니 회의실 복도가 미어터지는 것이다.
쪽지예산을 근절하는 것 정도로는 예산 로비 구태와 심사의 비효율을 바로 잡기는 어렵다. 예산 심의의 효율성이 떨어지는 것은 상임위가 제 역할을 못하기 때문이다. 상임위가 제 주머니 돈 쓰듯 마구 예산을 늘려놓으니 예결위가 이를 다시 심의해야 하는 웃지못할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그렇다고 다 걸러내는 것도 아니다. 그 과정에서 이른바 실세 의원들의 막강한 힘은 어김없이 작용한다. 그러니 줄을 대고 쪽지가 아니면 카톡으로라도 증액안을 밀어넣는 구태가 근절되지 않는 것이다.
국회 예산 심의가 워낙 부실하다보니 예결위와 상임위의 명확한 역할 분담 등 효율성 제고를 위한 다양한 방안이 제기되고 있다. 제도 개선도 뒤따라야 하지만 중요한 건 심의 과정의 투명성 확보다. 예산깎기는 공개하면서도 증액은 여야가 속기록도 없이 적당히 주고 받는 깜깜이 예산이다. 이런 게 다 공개돼 국민들이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국가 예산을 정치적 이해 충족 수단으로 삼겠다는 생각부터 버려야 한다. 재원은 한정돼 있고 쓸 곳은 언제나 많을 수밖에 없다. 예산은 반드시 자원의 합리적 배분이라는 원칙에 따라 배정되고 집행해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