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당시 우리나라 벤처생태계는 미국 외 최다의 벤처기업 수와 최대 규모의 벤처금융을 자랑하고 있었다. 주식옵션의 힘으로 인재들이 벤처로 몰려 들었다. 대기업, 언론사, 대학은 물론 꿈의 직장인 공무원들이 벤처로 이적, ‘제1차 벤처붐’의 주역이 됐다. 당시 언론의 조사 결과 신랑감 1위가 놀랍게도 벤처인이었다. 이스라엘과 중국은 한국의 이런 벤처환경을 부러워하고 있었다. 단언컨대, 2000년 한국의 벤처생태계는 세계 최고 수준이었다.
그런데 전세계적인 나스닥과 코스닥의 동반 붕괴현상에 대해 정책당국은 과잉대응으로 실수를 하고 말았다. 그 결과 세계 최고의 벤처 생태계는 무너지고 10년의 ‘벤처 빙하기’에 돌입했다. 10년의 빙하기에도 불구하고, 벤처기업 정밀실태와 천억벤처 보고서를 바탕으로 1차 벤처붐의 성과를 산정한 결과 304조원의 매출과 1.1%의 GDP성장 기여를 하고 있었다. 454개의 1000억 매출 벤처와 6개의 1조 매출 벤처가 등장했다. 현재 대한민국 세계 1위 기업 130개 중 63개가 벤처기업이다. 그리고 이들 대부분은 빙하기 이전인 2001년 전에 설립된 기업들이다.
반면 벤처에 투입된 공적자금은 외환위기 당시 대기업에 투입된 168조의 1.3% 수준인 2조 2000억원이다. 미회수 자금은 대기업의 62조원 대비 1%가 안 되는 6000억원에 불과하다. 이런 수치만 봐도 벤처는 분명 거품이 아니라 미래 성장동력인 것이다.
그런데 이런 벤처에 인재가 오지 않고 있다. 우수인재가 오지 않는 벤처기업에 미래가 있을까. 최우량 벤처기업인 휴맥스, 다산네트웍스에도 우수 대학 졸업생이 지망하지 않는다. 벤처기업에 우수인재를 끌어들이는 정책들이 시급한 이유다.
가장 중요한 것은 주식옵션 정책에 대한 금융당국의 전향적 자세다. 주식옵션에 대해 보수적인 금융당국의 정책이 우수인재를이 벤처로 유입하는 경로를 막고 있는 것이다. 지난 2년간 꾸준한 업계의 의견 제시를 조세당국은 수용, 대부분의 조세 문제는 해결됐다. 그러나 국제 회계기준인 IFRS의 규정 이상으로 경직되게 운영하는 금융당국의 회계 지침으로 주식옵션은 더 이상 벤처 인재유치 수단으로서 효용을 상실하고 말았다. 문제의 심각성은 이를 대체할 다른 대안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벤처인재들에게 코스닥의 의미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1000개가 넘는 상장 가능 벤처기업들은 상장 이후 대기업의 단가 압박을 우려해 코스닥을 외면하고 있다. 금융당국과 더불어 공정거래당국의 역할이 강화돼야 할 부분이다.
현재 벤처기업들은 인재 유치보다도 인재 유출을 더욱 우려하고 있다. 공들어 키운 인력이 대기업으로 이직하는 것을 막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직업 선택의 자유와 기업의 영업비밀의 침해라는 두 가지 가치의 충돌에서 실리콘밸리에서는 영업비밀 침해를 더욱 크게 다루고 있다. 이직은 자유이나, 영업비밀을 침해하는 경우에는 징벌적 배상을 부과하는 것이 미국의 공정거래위원회인 FTC의 역할이다.
작은 창업벤처의 경우, 인력유출은 기업의 문을 닫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한다. 한국에서 M&A가 극도로 부진한 이유 중 하나가 비싸게 기업을 사는 것보다 값싸게 사람을 빼오는 것이 대기업의 관행이기 때문이다. 이를 당국이 실제로 저지하지 못하고 있다.
이제 한국의 벤처는 10년 빙하기에도 불구하고 G밸리와 판교밸리와 같은 세계적인 ‘벤처 클러스터’를 형성하고 있다. 특히 선도벤처들이 모인 판교밸리에 벤처 역사와 미래를 볼 수 있는 전시관을 만들고 전국의 학생들에게 견학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인식 변화에 큰 역할을 할 수 있다. 견학이후 100여개의 주변 선도 벤처를 직접 체험하는 프로그램이 벤처인재 유치에 힘이 될 것이다. 잘라 말하거니와, 벤처기업에 인재를 허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