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원 ㈜이노크리에이션 대표
얼마 전 유럽여행을 가려고 여기저기 관광명소를 알아보던 중 블로그에서 눈에 띄는 포스팅 하나를 보았다. 현재 유럽에서는, 특히 EU 회원국들의 담배 규제가 갈수록 심해진다는 내용이었다. 군복무 시절 금연에 성공하고, 10년 넘게 담배를 멀리하던 나로서는 당연히 진행되어야 할 일이고, 유럽뿐 아니라 한국을 포함한 많은 나라들이 올바른 금연 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생각했다.
고개를 끄덕이며 스크롤을 내리던 중 난 경악을 금치 못했다. 흡연으로 인하여 발목이 썩어 들어가는 사진이 담뱃갑 중앙에 떡 하니 자리잡아 있었다. 현재 유럽에서는 담뱃값에 경고 문구 외에도 ‘경고 그림’이 도입되었고, 이는 이미 여러 나라에서 검토 중이라고 한다. 신체의 일부가 상한 더욱 혐오스러운 포스터가 판매점 외부 벽에도 도배된 것도 볼 수 있었다. 충격요법으로 흡연자들을 담배로부터 멀리하게 하려는 의도는 알겠으나, 이건 정도가 조금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국내에서도 흡연율을 낮추기 위해 담뱃세를 인상시키는 안이 논의 중에 있는 것 알고 있다. 하지만, 함께 추진 중인 충격적인 경고그림 도입은 조금 더 생각을 해봐야 할 문제인 것 같다. 특히, 전혀 다른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담뱃세 인상에 은근슬쩍 묻어가는 식으로 법안을 통과시키겠다는 것은 너무 급작스러운 결정이 아닐까 한다.
경고그림 도입안을 보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만일 미래의 내 아이가 이런 사진을 보게 된다면’ 이었다. 영화나 각종 영상매체에서는 지나치게 잔인하거나 폭력적인 내용의 경우 미성년자 관람불가 심의를 내린다. 같은 시각으로 보자면 담뱃값의 경고 그림 역시 미성숙한 아이나 청소년들이 보았을 때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인지 노출 대상을 조절할 수 있는 대안이 있는지 등 여러 측면을 사전에 충분히 검토한 후에야 정책안으로서 통과를 시키는 것이 맞지 않을까?
담배의 유해성은 흡연자뿐만 아니라 주변인에게도 간접흡연 등을 통해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친다. 필자 역시 그 심각성을 알기에 진작에 금연을 했고, 그 결정에 대해서 단 한번도 후회한 적이 없다. 하지만, 담배 연기만 공해가 아니라 이런 충격적인 그림이 공공장소에 버젓이 세워져 있다면 그것 역시 시각적 공해이자 간접적인 정신적 폭력행위가 아닐까 싶다. 특히 담배를 필 생각조차 하지 않는 사람들, 특히 임산부나 어린 학생들까지 무방비로 그러한 시각공해에 노출되는 경우에 대해, 정부는 흡연자의 건강을 지키는 것만큼이나 세심한 주의와 준비가 필요할 것이다.
최근 기사내용에 의하면 정부에서도 현재 흡연 경고 그림 도입안이 삭제된 국민건강증진법 수정안을 제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흡연율을 낮추려는 정부의 취지에는 100% 공감하지만, 국민의 정신건강을 생각한다면 경고그림의 도입은 보다 신중한 접근이 필요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