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1일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정윤회 국정개입 의혹’ 문건 유출 사건에 대해 입장을 밝혔다. 예의 단호하고 분명한 어조로 “이번에 문건을 외부로 유출한 것이 어떤 의도인지 모르지만 결코 있을 수 없는 국가 문란행위”라고 했다. 또 “청외대에는 시중에 떠도는 수많은 루머들이 들어오지만 그것들이 다 현실에 맞는 것도 아니고 사실이 아닌 것도 많이 있다”고 부연했다. “누구든지 부적절한 처신이 확인될 경우에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일벌백계로 조치할 것”이라고 말하는 대목에서는 노기(怒氣)까지 느껴졌다.
‘일어나면 출근이고 누으면 퇴근’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지난 2년간 오로지 국가와 국민행복을 위해 매진해온 박 대통령 입장에서는 당연히 할 수 있는 말들이다. 경제살리기, 공무원연금 개혁, 노동시장 개혁 등 성과를 내야할 과제들이 산적한데 소모적 정쟁거리의 돌출로 시간을 허비해야 하는 상황을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것이다. “금방 사실 여부를 알 수 있는 것을 확인조차 하지 않은 채 비선이나 숨은 실세가 있는 것같이 보도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한 것도 괜한 시비로 국정에 발목을 잡는 언론에 강한 불만을 표출한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의 억울한 심정은 이해못할 바 아니나 이 사태에 대한 대통령의 인식을 보는 국민의 시선은 불편하기만 하다. 자식이 말썽을 일으키면 부모가 대신 사과하고, 직원이 사고를 치면 기업주가 도의적 책임을 지는 게 사회적 상식이다. 경위에 어찌됐든 청와대 내 공식기록물이 밖으로 유출되고 그 안에 담긴 내용으로 연말 정국이 요동치고 있지 않은가. 문건에 등장하는 주인공도 대통령의 전 비서실장이고 친동생이다. 이들이 ‘만만회’니 ‘문고리 권력’ 이니 하며 청와대의 인사에 개입하고 자기들끼리 권력 암투를 벌이고 있다는 루머가 떠돈 게 오래지 않은 가. 청와대 주인이라면 국민의 걱정을 사고 있는 이런 일들이 벌어진 데 대해 먼저 사과부터 했어야 맞다. 박 대통령은 그러나 문건 유출에 일말의 책임이 있는 김기춘 비서실장과 수석들을 신뢰한다며 오히려 제 식구 감싸기에 급급했다. 대통령 신상과 관련한 사안이라면 입장 표명 형식도 기자회견 이어야 했다. 수석비서관에게 지시하듯 받아쓰게 하는 형식으로는 국민적 이해를 구할 수 없다. 대통령은 자나깨나 국가와 국민을 생각한다지만 많은 국민은 대통령의 국정운영 스타일을 걱정하고 있다. 대통령은 차제에 혹 자신의 폐쇄적 국정운영이 문건 파문의 근인이 되지 않았나 돌아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