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우 우리은행장의 연임 포기를 둘러싼 외압설이 시중에 파다하다. 이 행장은 1일 저녁 예고 없이 임직원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연임을 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힌 건 금융당국의 종용 때문이라고 게 금융권 시각이다. 앞 뒤 정황상 그런 이야기가 나돌만 하다. 금융계는 당초 이 행장은 연말 주총에서 연임이 유력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런데 이 행장이 이날 느닷없이 “맡은 바 소임을 다했다”며 사퇴의 변을 내놓았으니 의아해하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이 행장이 사의를 밝힌 시점은 다음 은행장을 뽑기 위한 후보추천위원회(행추위)가 열리기 꼭 하루 전이었다. 석연치 않은 사퇴이다 보니뒷말이 무성한 건 당연하다.
이번 파문이 예사롭지 않은 것은 그 이면에 박근혜 대통령이 졸업한 서강대 출신 금융인 모임인 ‘서금회’가 자리하고 있어서다. 이 행장의 후보 사퇴로 차기 행장은 서금회 회원인 이광구 부행장으로 사실상 내정된 것이나 다름없다고 한다. 결국 이 부행장을 은행장으로 밀어주기 위해 이 행장을 주저앉혔다는 소리가 아닌가. 250조원 자산규모의 은행장을 이런 식으로 뽑을 수는 없는 일이다. 물론 이 부행장이 행장으로서 자질을 갖추지 못해다는 건 아니다. 내부 출신 행장 선임도 긍정적이다. 다만 서금회 회원이라는 이유로 건전한 경쟁을 해치고 특혜를 받아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이명박 정부의 ‘4대 천왕’에 이어 박근혜 정부에선 서금회가 금융계를 장악하고 있다는 우려가 위험 수위를 넘나들고 있다. 불과 며칠 전 논란 끝에 선임된 홍성국 KDB대우증권 사장을 비롯 올들어 취임한 이덕훈 수출입 은행장, 정연대 코스콤 사장 등이 모두 서금회에 몸을 담고 있다. 더욱이 수출입은행은 은행장과 감사가 서강대 출신이 앉은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러니 관피아가 물러난 자리를 서금회가 독식하며 새로운 ‘관치금융’의 폐해를 낳고 있다는 소리가 나오는 것이다.
국내 산업 가운데 가장 경쟁력이 떨어지는 분야가 금융이다. 글로벌 금융시장은 무한 경쟁을 펼치는데 우리 은행들은 여전히 우물안 개구리 신세다. 그저 담보 대출로 챙긴 예대 마진으로 연명에 급급하고 있다. 기껏 해외에 진출해도 교포와 우리 주재기업 대상 영업이 사실상 전부다. 세계 100대 금융기관은 아예 꿈도 꾸지 못한다. 창의적 사고로 자생력을 키우기 보다는 줄을 서는 데 익숙한 고질병을 고치지 못해서다. 이게 다 관치 금융에 길들여진 탓이다. 권력이 금융을 장악하는 한 치유되기 어려운 병이다. 서금회의 과도한 부상(浮上)을 우려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