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아뿔싸. 한강을 코앞에 둔 개풍에 이르러 감사는 그만 적군에 잡혀 북쪽으로 압송되고 맙니다. 천신만고 끝에 홀로 강을 건넌 애기는 그날로 북쪽을 향해 밤낮으로 임의 무사를 기원합니다. 식음을 전폐하다시피하고 허구한 날 산꼭대기에 올라 빌고 또 빌더니 병이 들었고, 죽음이 다가오자 그 길목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묻어 달라 유언을 남깁니다. 마을 사람들은 그녀를 산봉에다 정성껏 묻어주고 애틋한 사연을 기렸습니다.
고 박정희 대통령의 친필로 새겨진 애기봉 비석 |
경기도 김포시 월곳면과 하성면에 걸쳐 있는 애기봉(愛妓峰))의 내력입니다. 한강과 임진강이 서로 만나 서해로 흐르는 곳에 오뚝 선 155m 산등이지만 워낙 요충지여서 한국전쟁 때부터 남북이 첨예하게 대치하는 곳입니다.
1966년 10월 이 곳을 순시하던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슬픈 전설을 전해 듣고 그 자리에서 친필 휘호를 써 남깁니다. 주민들은 이를 받아 비석으로 새겨 세웁니다. 강 하나를 마주한 이 땅의 천만 이산가족의 한 맺힌 설움과 상통한 때문이었습니다.
해발 155m 애기봉에서 내려다 본 북한 개풍 마을 |
이후 그 곳에는 전망대와 등탑이 들어섰고, 망원경 등 다양한 설치가 이뤄졌습니다. 북쪽을 훤히 들여다 볼 수 있어 실향민과 관광객이 많이 찾는 명소가 된 겁니다.
그런데 지난 10월 관할 해병부대가 느닷없이 그 등탑을 철거해 말썽을 빚었습니다. 43년이나 지나 낡았다는 게 표면적인 이유였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북한과의 마찰을 피하려는 의도가 짙어 저자세 논란으로 확대되기도 했습니다. 뒤늦게 사정을 안 박근혜 대통령은 공석에서 적절치 못한 조치였다며 군을 나무라기도 했습니다.
애기봉 성탄 등탑 점등식 |
연말연시를 앞두고 애기봉 정상이 다시 어둠을 밝힌다고 합니다. 없앤 등탑 자리에 기독교 단체가 9m 높이 성탄트리를 세우기로 한 것입니다. 순수한 종교행사를 막을 이유가 없다는 게 국방부 입장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리 간단해 보이지 않습니다. 북한의 태도가 마음에 걸립니다. 북측은 애기봉 등탑이 개성에서도 관찰될 정도의 주요 대북선전시설이라며 늘 조준사격 위협을 가해 온 터입니다. 파고드는 빛을 손바닥으로 가린다고 가려질까요. 은총의 불빛 하나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북한의 사정이 안타깝고 한심스럽습니다.
‘부처님 오신날’ 애기봉 등탑 |
아닌 게 아니라 김정일 사망 3주기(17일)와 맞물려 민감한 시기입니다. 도발이 우려됩니다. 겁먹지 않고 당차게 나설 수도 있지만 무고한 주민들이 혹여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농후한 상황입니다. 어디 북한의 도발행위가 정도를 따질 만한 일이 아닌 때문입니다.
기독교 안에서도 찬반이 엇갈리는 모양입니다. 불을 밝혀도 지혜롭게 불을 밝히는 방법은 없을까요. 무엇보다 만에 하나 불행한 사태는 없어야 겠습니다. 평화를 염원하는 그윽한 불빛 하나 편히 드리우지 못하는 분단 현실이 참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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