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사다난(多事多難). 한 해를 정리할때 흔히 쓰는 이 말은 올 한해 금융권을 대변하기에는 부족해보인다. 다재다릉(多災多凌)은 어떨까. 급조한 표현이지만 올해 금융권에서 일어난 많은 일들은 가히 재난 수준이다. 이는 곧 국민과 소비자를 능멸했고, 거꾸로 금융사들은 능욕에 가까울 정도로 수차례 창피를 당했다.
2014년 금융권을 관통한 용어를 검색해보니 유출, 사기, 징계, 갈등, 내홍 등이 주로 나온다. 연초부터 대규모 카드사 고객정보유출을 시작으로 KT ENS 사기대출에 휘말리다 도쿄지점 문제로 국내도 모자라 나라밖에서 제재를 받기까지 했다. 하반기들어서는 KB 사태가 온 금융권을 뒤덮었다. 금융사 임직원 징계는 사시사철 이어졌다. 희대의 대출 사기극 모뉴엘 사태가 터지더니 연말에는 ‘서금회’(서강대 출신 금융인 모임) 논란으로 대미를 장식했다. 이 정도면 살풀이 굿판이라도 해야하지 않을까?
기술금융, 서민금융 다 좋다. 문제는 금융의 가장 기본이 지켜지지 않았다. 금융 본연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것이다. 창조금융이니 금융선진화는 말할 필요도 없다. 늘 문제의 중심에는 사람이 자리한다. 유출, 사기, 갈등, 징계 모두 사람의 문제다. 특히 금융사의 최고경영자(CEO)가 교체될 때마다 생기는 잡음은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대기업 사장 인사때는 없는 잡음이 유독 은행장 인사때만 나온다. 결국 주인없는 자리를 누구나 차지할 수 있다는 사욕(私慾) , 그래서 정권 교체시마다 홍역을 치른다.
행장들은 취임때마다 인사청탁에 불이익을 주겠다고 공언(公言) 했지만 공언(空言) 일 뿐이다. 외부 입김에 취약한 구조가 전혀 바뀌지 않는다. 관피아가 쇠락하더니 이제는 더 지독한 정치권력이 파고든다. 고려대(이명박 전 대통령의 모교)가 저무니 서강대(박근혜 대통령의 모교)가 뜬다. 다음에 연세대 출신이 잡으면 최근 출범한 ‘연금회’(연세금융인회)가 목에 힘주는 시대가 되나? 한마디로 부끄러운 일이다.
이 시간에도 세계 금융시장은 급박하게 돌아간다. 러시아가 국가부도 사태로 치닫는 시점에, 국제 유가가 폭락해 세계 금융시장이 휘청이는 이 시간에도 정치권은 출처도 불명확한 종이 한장으로 극한 대립만벌이고 있다. 국회 긴급현안질문에서는 경제에 대한 걱정은 없고, 고성과 막말만 오간다. 누구 말대로 요즘 정치인 버릇부터 고쳐야하지 않겠나.
해외서는 요즘 핀테크(Fintechㆍ금융과 기술의 융합)로 무장, 호시탐탐 한국 시장을 노린다. 국내 핀테크 산업의 경쟁력이 제고되지 않으면 관련 산업과 시장이 글로벌 핀테크 기업에 종속될 수 있다는 경고가 여러차례 나온다. 그 걸림돌에는 각종 법과 규정에 의한 사전규제가 자리한다. 그런데도 당국은 옥죄기만한다. 당국의 집요함과 ‘몽니’는 올해도 금융인들이 절감한 한해였을 것이다. 금융인들 스스로도 자성이나 경쟁력 제고와는 거리가 멀었다.
이제 수장들이 다 교체됐다. 그렇다면 과연 2015년에는 한국의 금융이 부활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까? 큰 기대는 않지만 적어도 올해만 같지 않기를 바래본다. kimhg@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