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사(史)에 올해는 역사적인 해로 기억될 것이다. 영화 ‘명량’ 때문이다. 1761만명이란 불가능에 가까운 역대 최다관객은 물론 일일 최다관객, 개봉일 최다관객, 역대 최대매출, 최단 기간 1000만명 돌파 등 한국 영화사의 모든 기록의 정점을 새로 만들었다. 당분간 명량의 기록을 뛰어넘을 작품을 기대하긴 통계적으로도 어려울 것이다.

명량의 흥행에는 ‘이순신 리더십’이 배경에 깔려 있다. 백척간두에서 한발 더 나간 이순신 리더십은 많은 이들에게 적잖은 공명을 주었다. 정치인들도 수시로 이순신을 얘기하면서 감정이입을 했다. 하지만 그즈음 ‘칼의 노래’를 쓴 소설가 김훈은 “12척의 배로 333척의 적과 싸우겠다는 식의 지도자는 현대사회에서는 아무짝에 소용이 없다”는 말로 일갈했다. 정치인들이 자신을 이순신 장군인 양 착각하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시한 것이다. “현대사회의 지도자는 12척 대 333척이 되는 상황이 되지 않도록 미리 준비하고 대비해야 한다”는 현실적인, 정치인들이 진짜로 이영화를 통해 새겨들었어야 할 답을 내놓았다.

‘신에게는 아직 12척’이 많은 패러디를 낳았고, 이순신 리더십에 대한 갈망은 여전하지만 광화문에 우뚝 서있는 장군은 여전히 묵묵부답이다.

한국인들에게 올 한 해는 365일이 아니었는 지 모른다. 4월 16일, 그날 이후 한국은 망연자실했다. 때 이른 꽃이 활짝 피었던 그 봄 어느날 뒤 한국인의 시계는 한동안 멈췄다.

우여곡절 끝에 세월호 특별법이 통과되고, 내년부터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에 나설 특별조사위원회가 활동에 들어가지만 세월호 참사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충무공 동상 앞, 광화문 광장에는 세월호의 진실을 밝혀달라는 농성자들의 천막이 여전하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지 256일째인 지난 27일에도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촛불 문화제’가 열렸다. 해의 마지막날인 31일에도 대규모 문화제가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다.

장군의 동상 앞에는 동상 만큼이나 높은 ‘사랑의 온도탑’이 있다. 온도탑의 높이 만큼 온도계가 오르지 않는다. 예년 같았으면 60도를 넘었을 온도계가 아직 60도에 못미친다. 그나마 크리스마스 동안 국민들의 힘을 보태 50도를 넘겼다. 사랑의 온도탑 수은주가 예년보다 더딘 것은 경기가 신통치 않았기 때문이란 분석이 가장 많다. 하지만 올 한 해 이런 저런 일로 한국인들의 타인에 대한 감성이 무뎌진 게 아닐까 하는 걱정도 든다.

‘올해 뭐하고 살았지’는 세밑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문자답한다. 물어는 보되, 답은 마땅치 않다. 그래도 각자 자리에서 무엇이라도 했으니, 대한민국이 여기까지 온 게 아닐까 스스로 위로를 해 본다.

한국의 중심지 광화문 광장의 연말 풍경은 올 한해 한국인의 겪은 세월 처럼 스산하다.

새해가 다가온다. 희망이란 말이 어느때보다 소중하게 느껴져야 할 시기다. 희망의 5할은 늘 배신당한다. 올해도 곳곳에서 희망으로 시작했지만, 끝은 이렇다. 하지만 그래도 새해, 무엇이든 한가닥 희망을 갖고 출발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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