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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읽기-정재욱]교황이 질타한 우리사회 15가지 질병
‘교황청이 15가지 질병에 걸렸다’. 지난 연말 프란치스코 교황이 교황청 사제들에게 쓴소리를 쏟아냈다. 그 핵심은 “교황청은 영적 치매에 걸렸다”가 아닌가 싶다. 사제들이 신과의 만남이란 본연의 소임을 망각하고 있다는 통렬한 자성(自省)인 셈이다.

놀라운 것은 교황이 지적한 항목 하나 하나를 우리 사회 전반에 대입해도 정확히 맞아떨어진다는 사실이다. 지난해 세월호 수습 과정 하나만 놓고 보더라도 대한민국 전체가 주어진 소임을 다하지 못했음이 여실히 증명됐다. 선장과 선원은 승객과 배를 버리고 먼저 줄행랑을 쳤고, 해경 구조대는 자신의 소임이 무엇인지조차 모르는듯한 모습이었다. 대통령을 보좌해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줘야 할 청와대와 정부 역시 제대로 기능이 작동하지 못했다.

교황이 첫번째 질병으로 지목한 ‘불멸의 존재로 반드시 필요한 사람이라고 느끼는 것’이라는 대목도 그렇다. 교황청과 사제들이 자기 비판과 혁신이 없다는 지적이다. 한 마디로 무사안일이며 복지부동이라 할 수 있다. 이른바 ‘정윤회 문건’ 스캔들이 일파만파 번져나가고, 대통령과 국민들간 소통이 되지 않는다고 아우성인데 청와대는 ‘찌라시’ 운운하며 마이웨이로 일관했다. 사태의 본질이 무엇인지는 알려고도 하지 않은 듯한 불통의 모습에 국민들은 더 화가 났다. 스스로에 대한 비판과 겸허함은 어디에도 없었다.

일반인들이 귀담아 들어 둘 내용도 곳곳에 보인다. 가령 열심히 일만 하는 것, 과도한 계획으로 자율성을 옥죄는 것, 협업없이 일하는 것 등이 그 예다. 누구든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보스에 대한 지나친 찬미’ 항목에 이르면 정치권과 권력 주변을 맴도는 인사들, 일부 재벌기업들은 속으로 뜨끔했을 듯하다. 과공비례(過恭非禮)이며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하지 않았는가. 따지고 보면 대통령의 소통 부재와 여전히 진행중인 ‘땅콩 회항’ 사태가 비롯된 근원이 여기에 있다. 그러나 찬미가를 부르는 조직원만 탓할 일은 아니다. 정작 문제는 이를 은근히 즐기고 조장하는 보스에게 있다.

개인적으로는 ‘가십 주의령’이 가장 아프게 느껴진다. 여기서 말하는 가십은 ‘험담’이고 ‘뒷담화’다. 프란치스코는 “직접 말할 용기가 없는 겁쟁이들이 뒤에서 말한다”고 일갈했다. 익명의 그늘에 숨어 ‘표현의 자유’라며 쏟아내는 독화살 같은 악성 댓글들이 세상을 황폐화시키고 있다. 진영논리에 갇힌 편협한 험담들로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우리 사회가 극복해야 할 최우선 과제다.

영적ㆍ정신적 경직, 출세가 목표가 되는 것, 이중생활과 위선, 무관심, 표정없는 얼굴, 과도한 물질적 욕망, 이너서클 추종, 세속적 이익 추구 …. 그 한마디 한마디는 교황청 클레멘타인 홀에 모인 고위 사제들을 향한 질타지만 지구 반대편을 우리에게는 날카로운 비수로 다가온다.

청양(靑羊)의 해가 시작됐다. 12지간에서 양은 배려와 융합의 의미라고 한다. 양의 무리처럼 서로를 위하고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한 해가 되길 간절히 소망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날을 세워 던진 15개의 메시지를 곰곰 되짚어 보면 그 속에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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