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을 통일한 진(秦)나라는 법가의 통치철학을 택했다. 호족들의 발호를 막고 강력한 중앙집권을 이루는 데는 엄격한 규제가 유용했다. 그런데 진을 이은 한(漢)은 강력한 규제개혁에 나선다. 고조(高祖) 유방(劉邦)이 선포한 국가 규제는 단 세 조항의 약법삼장(約法三章)이 전부다. 진의 통일전쟁(B.C 230~221)과 초한(楚漢)전쟁(B.C 206~202) 등 30여년의 혼란기로 피폐해진 민생을 위한 특효약이었다.
유방 이후 2~4대 황제시기 개국공신들의 반란과 외척의 발호로 어려뤄진 경제를 다스린 이는 5대 문제, 6대 경제다. 이들은 세금을 가볍게 하고, 당시 주력 산업이었던 농경을 적극 육성하는 개혁을 단행한다. 전설이 아닌 중국 역사상 첫 태평성대인 문경지치(文景之治)다. 17년으로 단명한 진제국과 400여년간 존속한 한제국의 결정적 차이다.
반대로 진시황이나 수양제(隋煬帝)는 통일전쟁으로 경제가 피폐해진 상황에서 무리하게 대규모 토목공사를 일으켰다. 만리장성과 직도(直道, 일종의 고속도로), 대운하 등은 통치와 경제효율을 위해 필요한 조치일 수도 있지만, 민생이 이를 감당하지 못했다.
전쟁비용을 위해 소금과 철을 국유화시킨 한무제(漢武帝), 전쟁으로 재정이 고갈되자 작서모세(雀鼠耗稅, 창고에서 쥐가 축내는 곡식을 메우기 위한 세금) 등 기상천외한 세금을 신설한 후당 장종(莊宗)도 있다.
연초부터 담뱃값 인상에 연말정산 세부담 증가 등으로 민심이 흉흉하다. 추억의 까치담배까지 재등장했다. 각종 공공요금도 줄줄이 인상됐다. 정부의 저금리 정책은 빚부담을 줄이는 효과보다는 전세와 월세값을 더 높이고, 이자소득이 중요한 고령자들의 소비만 더 옥죄는 현상을 낳고 있다.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경영환경은 어려운데 연구개발(R&D)과 투자관련 세제혜택이 올 해부터 대부분 사라진다. 무역 장벽 없애는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자랑하는 정부가 석유류 등에 붙는 관세는 높였다. 저유가에서 에너지 가격이 낮아질만 하지만 전기료는 그대로이고 발전소에 붙는 지방세만 배 이상 높아졌다. 모두 세수 부족이 이유다.
춘추시대 제(齊)나라 명재상 안영(安)의 행적을 모은 안자춘추에 귤화위지(橘化爲枳) 얘기가 있다.
애국심이나 사업보국으로 희생을 강요하던 때는 지났다. 가계와 기업의 화식(貨殖) 여건을 얼마나 잘 살피느냐가 이제는 정부과 국가의 글로벌 경쟁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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