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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한강 결빙(結氷)을 보는 색다른 시선
[헤럴드경제=함영훈 선임기자] 한강이 다시 얼었다. 얼어붙은 한강을 보면 여러 정서가 교차한다. 마음 마저 얼어붙는 듯한 냉랭한 감성이 휘감는가 하면, 꽁꽁 얼어붙은 얼음판 위를 밟으며 물 위를 걷는 색다른 맛도 얻는다.

함영훈 선임기자
30~40년전 강가의 추억을 뒤로한 채 헤어진 첫 사랑이 생각나다가도, 얼음썰매놀이, 팽이치기, 연날리기에 여념이 없던 그 시절 동무들의 해맑은 웃음이 떠오르기도 한다.

웬만한 나룻배로도 건너기 쉽지 않던 우마차는 한강이 얼면 기다렸다는 듯이 강남ㆍ북을 오가며 봄, 여름, 가을 묵혀두었던 볼 일을 해결하고, 개점휴업을 맞은 마포나루 상인들은 소고기국밥집 화로 옆에서 대포 몇 순배 주고받으며 화려하거나 거창하지 않은 말투로 새해 경영전략을 거론했다.

한강의 결빙은 ‘땀’을 상징하기도 한다는 얘기는 꽤 흥미롭다. ‘추워 죽겠는데 땀이라니….’ 하는 생각이 퍼뜩 들어서이다.

한겨울에 땀 나도록 일해 얼음을 저장하고, 한여름엔 이 얼음으로 시민들의 땀을 식혀주는 ‘얼음 노동자’의 열정적인 작업은 한강결빙때에만 볼 수 있는 대표 풍경 중 하나였다. 지금이야 한강 결빙일수가 보름을 채 넘기지 못하지만, 1900년대에만에도 최장 80일, 1960년대 40일이었고, 1970년대까지만해도 30일에 육박했다. 수질오염과 지구온난화 등의 영향으로 결빙일수가 크게 줄었지만, 50년전만해도 얼음노동자들의 작업 풍경은 결코 생경한 것이 아니었다고 한다. 한겨울 언 강에서 얼음을 만들어 빙고(氷庫)에 저장하는 역사가 우리나라 만 해도 2000년이나 된다.

▶1950년대 채빙 작업 풍경 [이미지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

“동지섣달 한강이 처음 꽁꽁 얼어붙자/ 천 사람 만 사람이 강 위로 나와서는/ 쩡쩡 도끼 휘두르며 얼음을 깎아내니/ 은은한 그 소리가 용궁까지 울리누나/ 아침마다 등에 지고 빙고에 저장하고/ 밤마다 망치 끌을 들고 강에 모이누나/ 낮은 짧고 밤은 긴데 밤새 쉬지 않고/ 강 위에서 노동요를 서로 주고받네/(중략) 유월이라 푹푹 찌는 여름 고당 위에는/ 미인이 고운 손으로 맑은 얼음 전해주니/ 난도로 내리쳐서 온 자리에 나눠주면/ 허공 밝은 태양 아래 하얀 눈발 흩날린다/ 얼음 깨는 수고로움을 그 누가 말해주랴/ 그댄 못 보았나 길가에서 더위에 죽어가는 백성들을/ 대부분 강 위에서 얼음 캐던 사람이라네.”

조선 숙종때 대사성을 지내던 문신이자 학자인 농암 김창협(1651~1708)의 ‘얼음 캐는 노래(鑿氷行)’ 역시 흥겨움과 서글픔이 교차한다. 마치 영화 ’국제시장‘ 처럼 복잡다단한 감흥에 휩싸이게 한다.

양기정 한국고전번역원 책임연구원은 “1세기무렵 빙고가 있었다는 기록이 있고, 해방 전후까지만 해도 겨울 한강에서 채취한 얼음을 보관했다가 여름에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었다”면서 “권신의 개인 빙고에 백성을 동원하는 부조리를 없애기 위해 조선조부터 나라에서 동빙고(동호대교 부근 두무포), 서빙고(용산 둔지산 기슭)를 관리해 얼음을 저장하고 공급했다”고 설명했다.

양 연구원은 “이 시에는 조선 시대 얼음을 캐던 백성들의 고충이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는 동시에, 지배층과 피지배층의 양극화된 삶이 극명하게 대비되어 있다”면서 “농암은 이 시를 통해 백성들의 고난을 묘사하고 지도자가 여민동락(與民同樂:백성들과 고락을 같이하는 것)하지 못하는 세태를 비판함으로써 국가의 존망을 염려했다”고 해설한다.

한강의 결빙은 추억, 감회, 정담, 사색을 넘어 여민동락의 참뜻까지 느끼게한다는 점에서 더욱 마음이 간다.

/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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