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홍길용 기자]공자(孔子)가 존경한 인물 중 춘추시대 제(齊)나라의 중흥을 이끈 재상 안영(晏嬰)이란 사람이 있다. 그런데 동 시대를 산 두 사람의 첫 대면은 그리 쉽지 않았다.
제나라를 방문한 공자는 처음 애써 안영을 만나지 않았다. 제자가 이유를 묻자 “세 임금을 섬기면서도 순탄한 삶을 살아, 그 인물 됨이 의심스럽다”고 답한다. 영공(靈公), 장공(莊公), 경공(景公) 등 세 임금이 정변으로 바뀌는 가운데 많은 귀족들이 몰락했지만 안영의 벼슬과 지위는 점점 더 높아졌기 때문이다.
공자의 비판을 전해들은 안영은 “하나의 마음으로 세 임금을 섬기는 자는 순탄하지만, 세 마음으로 하나의 임금을 섬기는 자는 순탄할 수 없다”고 반박한다. 그는 임금 개인이 아닌 국가, 즉 백성을 위한 질서 자체를 섬김의 대상으로 삼았다는 뜻이다.
반박을 들은 공자는 곧 자신의 잘못을 인정했고, 이후 두 사람의 만남이 이뤄진다.
실제 입바른 소리 잘하는 안영은 정변 때 마다 임금과 귀족들에게 쓴 소리를 쏟아냈지만, 권력자들은 백성의 신망이 두터운 그를 어찌하지 못했다.
안영과 비슷한 시기를 살았던 제나라 정치가 가운데 최저(崔杼)라는 이가 있다. 영공 때 등용돼 장공, 경공을 옹립시킨 정변을 주도하며 세 임금에 걸쳐 최고의 권력을 가졌던 실력자다. 권력을 다루는 최저의 기술이 얼마나 뛰어났던지, 사람들은 그를 부도옹(不倒翁, 절대 쓰러지지 않는 노인)이라고 불렀다. 그는 안영과 달리 그때그때 자신의 이익에 따라 임금을 다르게 대했고, 결국 본인도 권력 다툼에 희생된다. 최저는 친자식과 동료에게 배신당하고, 백성들로부터도 외면 당하며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연초부터 북미 가전쇼(CES), 디트로이트모터쇼 등에서 최첨단 미래 기술이 선보이고 있다. 당장 전시회에 소개된 기술들만 현실화돼도 우리 삶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기술이 발전되면 더 나은 세상이 열리는 것일까?
청동기시대보다는 철기시대에, 산업혁명 이전보다는 이후 대량살상이 더 빈번해졌다. 웨어러블(wearable) 기기를 통해 더 많은 우리 정보가 사이버상에 노출될 수 있다. 무인ㆍ원격 조종기술도 자칫 불순한 의도로 사용되거나, 오류가 발생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 생명공학에서 인간복제 논란처럼 발달한 IT기술이 가져올 도덕적 문제에 대해서도 고민할 때다.
앞서서 기술을 개발하고, 시장을 선도해 이윤을 추구하는 게 기업의 일이다. 하지만 기술과 이윤에만 집착해 인간을 망각한다면 엄청난 재앙을 초래할 지도 모른다. 권력 자체에만 집중했던 최저의 실패와, 권력의 올바른 쓰임에 끝까지 충실했던 안영의 사례는 화식(貨殖)의 지혜로도 꽤 유용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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