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치를 한 단어로 정의하라면 주저없이 ‘바람’이라 하겠다. 바람은 실체가 없다. 공간 크기의 차이가 바람을 만들어낸다.
조건이 맞으면 바람이 불고, 그것이 사라지면 바람도 잦아든다. 그래서 바람은 불안하면서 혁명적이다. 어떻게 불지 모르고 불기 전에는 얼마나 거대한 바람이 불지조차 가늠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한국 정치의 불안정성이 바람의 속성에서 비롯된다면 정치개혁의 기운 또한 그렇게 휘몰아칠 수 있을 것이다.
정동영 전 의원의 새정치연합 탈당과 국민모임 참여는 새로운 바람의 진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진보적 명망가로 구성된 국민모임이 만들어졌을 때 이들이 실질적인 정치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대중적 지명도가 약한 인물로 선거에서 이기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난 11일 17대 대선후보였던 정동영 전 의원이 합류하면서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 천정배 전 의원까지 가세한다면 다음 보궐선거에서 국회의원 의석까지 확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되면 야권 재편의 바람이 ‘충분히’ 불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새정연은 야당으로서 국민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어려운 집단으로 간주돼온 지 오래다. 10%대 지지에 묶여 벗어나지 못한 게 얼마나 되었는가. 지금까지 정부나 여당의 잘못으로부터 반사이익을 취하며 버텨 왔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정당이 이렇게 오래 버텨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한국 정당정치의 구조적 문제라 할 수 있다. 지역주의 구도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정파적 이익만 챙긴 것이다.
지지할 정당이 없어 유동하는 유권자가 40%나 되는 상황에서 ‘국민의 눈물’의 닦아줄 수 있는 새로운 정당이 필요한 시점이다.
야당으로서도 당장은 섭섭하겠지만, 이러한 상황을 반대할 필요는 없다. 국민의 관점에서 볼 때 한국의 정당체계는 보수-중도-진보정당으로 구축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다. 지금까지 야당은 반여권 유권자의 어쩔 수 없는 선택지였다.
야권 지지 유권자가 선택할 수 있는 정당이 많아진다는 것은 야권 내부에 경쟁적 구도를 만들게 될 것이다. 건강하고 유능한 진보 신당은 새정연의 혁신과 발전에 구조적 유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스스로 개혁할 수 없다면, 외부와의 경쟁만큼 좋은 자극은 없다. 게다가 강력한 진보정당이 있을 경우 야당의 중도성향이 강해지면서 보수적 유권자를 흡수할 여지가 넓어지는 이점도 있다.
이제 남은 문제는 국민모임이 새로운 진보신당으로 제대로 자리를 잡는 일이다. 정동영 전 의원의 합류와 그의 자세는 좋은 밑거름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일단 대선 후보였던 거물 정치인이 함께 함으로써 실질적 정치세력으로서의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러한 가능성이 신당의 바람이 불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
정동영 전 의원이 언급했듯이 “모든 것을 버리고 백의종군”하겠다는 자세야말로 바람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빈 공간을 만들어낼 수 있다. 훌륭한 정치인의 공통점은 ‘비움’의 가치를 안다는 것이다
한 가지 걱정은 국민모임이 지나치게 이념에 집착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념’보다 ‘국민’을 생각하는 정신이다.
지금까지 많은 진보신당 운동이 있었지만 국민의 눈물을 닦아주는데 실패했다고 생각한다. 국민모임의 정신이 국민의 눈물을 닦아주는 것이라며 구체적 정책프로그램을 통해 이를 추구해야 한다.
정치는 혼자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다른 당과 협력해야 한다. 특히 여당과의 협력이 중요하다. 보수진영과의 이념적 논쟁에 휘말려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국민이 바라는 정치는 각 정당이 자신들이 추구하는 정책적 지향을 갖되 협력할 것은 협력하면서 국민을 위해 일하라는 것이다. 자신의 이념보다 중요한 것은 국민의 이익이란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