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또 해결사 역할을 했다. 서울중앙지법은 지난 16일 현대차 노조원 23명이 상여금과 휴가비등 6개 항목을 통상임금에 포함시켜 달라며 제기한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은 지난 2013년 12월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에 포함한다’는 취지의 판결을 하면서 통상임금의 기준으로 정기성, 일률성, 고정성 등 3가지 요건을 제시한 바 있는데, 하급심이 여기에 살을 붙이는 모습이다. 상여금 지급때 다른 조건과 상관없이 당연히 지급하는지를 따지는 ‘고정성’의 범위를 좀 더 명확히 했다.
통상임금이 현안으로 부각된 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대법원 판결이 나온게 벌써 재작년이고, 개별 사업장별로 진행중인 통상임금 관련 소송은 200~300건에 달한다. 그러나 통상임금의 범위등 개선 방안을 입법화해야 할 국회나 정부는 법원만 쳐다보면서 정작 자신들이 할 직무는 유기하고 있다.
2013년말 대법원의 판결 직후 국회는 통상임금 문제 등을 포함한 근로기준법 개정을 논의할 노사정소위를 만들었으나 두달여만에 성과없이 해산했다. 국회에 계류돼 있는 관련 법안들은 심의가 미뤄진 채 먼지만 쌓이고 있다. 정부와 노동계ㆍ재계가 참여하는 노사정위는 우여곡절 끝에 작년말 노동시장 개혁의 큰 틀에 합의, 올 3월까지 통상임금 등 노동시장 개혁을 위한 논의를 마무리하기로 했다. 하지만 주도적으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야 할 노사정위도 법원의 판결을 지켜보며 가이드라인을 설정하고 있다.
선거구 획정은 헌법재판소가 제도 개선의 물꼬를 텄다. 헌재는 지난해 10월 현행 공직선거법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3대 1인 선거구 인구편차가 평등선거 원칙에 위배되므로 2대 1로 줄이라고 판결했다. 국회의원 선거구는 민의를 제대로 반영할 수 있도록 하는 총선의 룰이므로 객관적이고 중립적으로 설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국회내 선거구획정위는 그동안 시대의 흐름은 외면한채 기득권 옹호에 급급한 여야의 당리당략에 휘둘렸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그런데 헌재가 새 원칙을 제시하면서 정치권은 타의에 의해 선거구 조정은 물론 선거구획정위의 독립성 확보 방안에 대해서도 논의할 수 밖에 없는 처지가 됐다.
법원 판결이 정치를 선도하는 모습이다. 국회나 정부가 할 일을 제대로 하지 않고 미적거리는 사이 법이 나서서 방향을 제시하는 형국이다. 물론 헌재는 헌법질서 수호를 통해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하는 기관이고 대법원 판례는 구속력있는 사회 규범으로 작동한다. 하지만 정치권이 해법을 도출해야 할 사회적 현안을 판결에 맡기는 것은 뭔가 불안정하다. 법관이나 헌법재판관이 모두 솔로몬 같은 ‘현자’들이라면 다행이지만 한편에서는 시대정신의 부족이나 이념적 쏠림을 걱정하는 소리도 있다. 법관들은 민형사 소송 사건만으로도 머리에 쥐가 날 정도로 격무에 시달린다. 이들에게 사회 현안의 해법까지 찾아달라고 주문하지 말자. 사회적 총의를 모아 사법적 판단의 기준을 정하는 것은 국회의원들이 해야 할 책무다. parksy@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