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정책금융 운용실태를 보면 우리 금융기관 경쟁력의 후진성과 실적에 급급하는 일과성 탁상정책의 한계가 여실히 드러난다. 은행 등 일선 금융기관은 정책금융 드라이브가 걸리면 실적을 부풀리는 방식으로 교묘히 비켜가기 일쑤다. 금융당국은 이런 엉터리 성과에 고무돼 목표치를 더 늘리는 한심한 일들이 매 정권마다 반복되고 있다.
중소ㆍ벤처기업의 기술과 특허를 평가해 담보없이 자금을 빌려주는 ‘기술금융(기술신용대출)’이 딱 그렇다. 지난해 하반기 도입된 기술금융이 연말 9조원에 육박하는 실적을 올렸다고 한다. 당초 정부가 예상했던 것보다 두 배나 많은 규모다. 기술금융이 크게 늘어난 것은 일단 반가운 일이다. 좋은 기술이 있지만 담보가 없어 운전자금을 마련하지 못해 이를 사장(死藏)시킨다면 당사자는 물론 국가적으로 큰 손실이다. 이런 기업들을 제대로 키워보자는 게 원래의 취지가 아닌가.
하지만 9조원의 돈이 풀렸는데 정작 수혜를 받은 중소ㆍ벤처기업은 찾아보기가 어렵다는 게 문제다. 기술금융 실적을 올리라고 정부가 금융기관을 다그치자 갖은 편법으로 수치만 부풀려놓았기 때문이다. 가령 기존 거래 중소기업의 일반대출을 기술금융으로 돌리거나, 자영업자 대출까지 슬쩍 포함시키는 일이 비일비재했다고 한다. 이런 눈 가리고 아웅식으로 운용해선 박근혜정부가 주창하는 창조경제 활성화는 어림도 없다. 하긴 이런 일들이 비단 이번 정부에서만 있었던 건 아니다. 녹색성장을 기치로 한 이명박정부의 ‘녹색금융’, 정보기술(IT) 육성에 적극 나섰던 김대중정부의 벤처자금 지원 등이 모두 그랬다.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기 위해 밀어붙였다가 정권이 끝나면 대부분 흐지부지 사라졌다. 기술금융 역시 그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무엇보다 금융기관의 위험분석 능력을 키우는 게 급선무다. 은행 자체적으로 중소기업의 신기술이나 특허권의 가치를 빈틈없이 평가하고 이를 토대로 수익성을 높일 수 있어야 비로소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그것이 기술기업과 금융기관이 살고, 기술금융도 빛을 발하게 하는 길이다. 현장실사조차 없이 제출된 서류만 보고 거액을 내준 모뉴엘 사기 대출 사건도 따지고 보면 금융기관의 심사분석 능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정책금융은 정권에 관계없이 지속적이어야 한다. 지금처럼 정부 ‘코드’나 맞추며 단기 실적에 연연해선 늘 그랬듯 단명할 수밖에 없다. 금융당국 역시 실적만 요구할 게 아니라 금융기관의 검증 역량 강화를 유도하는 방안부터 내놓는 게 순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