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시대 제(齊) 영공(靈公)은 남자 옷을 입은 여자를 좋아했다. 보통 시호에 ‘靈’을 쓰면 뚜렷한 업적이 없거나, 뭔가 사고를 쳤던 임금이란 뜻이다. 남장처럼 색다른 취향을 가졌던 것을 보면 영공도 그리 똑똑한 임금은 아니었던 듯 싶다.
여하튼 임금의 취향에 따라 궁내 여인들이 남자 옷을 입고 다니자, 여염집 여인들 사이에서도 남자 옷을 입는 게 유행처럼 번졌다. 그래도 당시는 남녀가 유별하고, 예법도 엄격했던 시기다. 남장이 유행한다는 소식을 들은 영공은 대대적인 단속을 명령한다. 엄청난 수의 단속원이 동원돼 여자들이 입은 남자 옷을 찢고 허리띠를 끊었다.
그런데 단속을 아무리 엄하게 해도, 남장 유행은 계속됐다. 결국 영공은 고민 끝에 지혜롭기로 소문난 안자(晏子)를 부른다. 안자의 해결책은 간단했다. “궁내 부인들의 남장은 놔두고 밖의 백성들에게만 금지하니, 이는 마치 바깥 문에 소머리를 걸어 놓고 안에서는 말고기를 파는 것과 같습니다” 영공은 즉시 궁 내에도 여인들의 남장을 금지했다. 이어 채 한 달이 안돼 남장 유행은 사라졌다. ‘표리부동(表裏不同)’, ‘속이다’는 뜻의 양두구육(羊頭狗肉)은 안자의 우두마육(牛頭馬肉)에서 비롯됐다.
연초부터 직장인들의 심기가 불편하다. 회사는 구조조정이다, 긴축경영이다 해서 어수선하고, 담배 값은 잔뜩 올랐다. 연말정산 해보니 당초 정부 설명과 달리 세금 더 내게 생겼다. 물건값 오르고 세금 더 내는 것을 반길 국민은 없다. 동서고금을 통해 마찬가지다. 그래도 정부로써는 물건값 올리고 세금 더 걷어야 할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납세자들의 공감이다. 담뱃값 인상. 국민건강 때문이라고 하지만 그렇다고 공감하는 국민은 얼마나 될까? 세액공제로의 연말정산 제도변경. 증세 아니라지만 이를 공감하는 국민은 또 얼마나 될까? 세원발굴. 중산층과 서민 세부담을 늘리는 건 아니라고 하지만 이 역시 공감하는 국민이 얼마나 될까?
정부는 내수 활성화를 올 경제정책의 주요한 목표로 내걸고 있다. 그러면서 세금을 더 걷는단다. 희한한 논리다. 세금 더 걷어 정부 지출 늘리면 경기가 활성화되는 걸까? 경제에서 국가 비중이 아주 크다면 그럴 수도 있다. 그건 옛날 얘기다. 지금은 민간경제의 비중이 정부보다 훨씬 높다.
쓸 돈이 부족하면 먼저 허리띠를 졸라매는 게 순리다. 공무원들 쓸 돈 없다고 국민한테 돈 더 내라는 게 말이 안 된다. 누구를 위해 쓰는 돈인가? 예산심사는 치밀하게 하지만, 결산은 대충 흘리는 게 우리 정부와 정치권의 잘못된 관행이다. 정부 결산 꼼꼼히 살펴 낭비부터 없애야 한다. 허리띠 졸라매고도 정 부족하면 어쩔 수 없이 더 걷겠다고 솔직히 얘기하는 게 옳다. 세금 더 걷으면서 증세는 아니라는 궤변은 납세자들에 대한 기만이다.
자존심 강한 대통령이 ‘유감’이라는 표현까지 쓴 걸 보니 정부도 뭔가 잘못됐음은 깨닫는 분위기다. 안자춘추(晏子春秋)에 ‘소인은 자기 잘못을 사죄할 때 말로써 하고, 군자는 물건으로 사죄한다’는 말이 있다. 대통령이 ‘소인’이 아니라면 세금논란은 말로만 끝낼 문제가 아니다. kyh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