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感), 능(能), 력(力).
아마 정책을 수립하고 추진하는데 있어 공직자가 갖춰야할 덕목이 아닌가 싶다.
감이란 순발력이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감이 좋다. 언제, 어떤 조치를 내고, 어떤 곳을 찾아야할지를 잘 안다. 그래서 연초부터 바빴다. 양띠인 최 부총리는 청양의 해가 밝자마자 이곳저곳에 나타났다. 연초부터 인천항 컨테이너 터미널을 시작으로 구로 디지털밸리 등 산업현장을 찾아 산업역꾼을 다독였고 영화 국제시장의 주무대인 부산 국제시장에서 상인들과 어깨를 나란히했다. 학생들이 ‘F학점’을 준다고 하자 바로 대학가에도 출현했다. 이들 현장은 수출에 대한 기대, 기술혁신 신산업 육성, 청년일자리와 비정규직 문제 등과 직결된 곳이다. 감이 돋보인 행보다.
연말정산 파문이 터지자 더 빨랐다. 바로 사과했고, 앞뒤 재지않고 국회로 달려갔다. ‘친박 실세’답게 여당을 설득, 연말정산 환급이라는 초법적 조치까지 끌어냈다. 이 부분은 힘이다. 전임 부총리같으면 택도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이런 요소들은 재능에도 속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감’에만 너무 의존하는 건 아닐까? 연말정산 환급조치등 정부와 여당이 내놓은 개선안은 일단 급한 불만 꺼고 보자는 식이다.
관련 법 개정은 국회 문턱을 넘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이번 사안은 작년 세제개편안때부터 잉태됐던 문제다. 그 모태는 ‘증세 없는 복지’다. 이는 앙꼬 없는 찐빵과도 같다. 성립자체가 불가능하다. 복지에는 반드시 돈이 필요하고 그 돈은 누가 내도 내야한다. 그럼에도 누가 더 세금을 내야하는지, 어떤 계층이 환급을 덜 받는지에 대한 정확하고도 솔직한 설명이 없었다. 알고도 얼버무렸다면 꼼수이고 모르고 정책을 폈다면 직무유기인 셈이다.
이번엔 감이 너무 앞섰던 것일까? 연말정산에서 놀란 정부가 돌연 건강보험료 개편안을 백지화시켰다.
그야말로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 겪이다. 이번엔 아예 시행조차 못해보고 전면 보류했다. 개편되면 602만명(지역가입자 중 건보료 인하 대상)에게 혜택이 돌아가는데도 건보료가 오르거나 새로 내야하는 45만명(소득 2000만원 이상 피부양자 포함) 고소득자의 원성을 먼저 걱정했다.
소득에 따라 건보료를 부과하겠다던 야심찬 국정과제가 추진 2년만에 좌초된 것이다. 저소득자나 실직자 등을 위한 건보료 경감은 물건너갔다. 이에 대한 국민들의 반응은 실망 그 자체다. 연말정산 파동때 고조된 불만이 이번엔 큰 실망으로 표출되고 있다. 이런 결정들의 뒤엔 청와대가 있을 것이다. 아마 급락하는 대통령 지지율을 더는 보고드리기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일련의 과정에서 빠진 것은 바로 ‘혼(魂)’이다.
국민을 위한 정책에는 감과 힘 만으로는 부족하다.
새해부터 펼쳐지는 정책 불확실성은 국민의 불신만 고조시킬 뿐이다.
과연 박근혜정부에서 공직자들이 정책에 혼을 담고 있는지, 정말 어려운 국민을 위해 혼신을 다해 정책을 입안하고 추진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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