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이 28일 “금년 중에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선안을 만들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소득 중심의 건보료 개편 논의를 사실상 원점으로 돌리겠다는 방침을 시사한 것이다. 건보료 부과체계는 당초 민ㆍ관 합동으로 꾸려진 ‘건보료 부과체계 개선 기획단’에서 29일 7개안을 제시해 발표하면 이를 검토해 하반기까지 정부안을 확정해서 내년부터 시행할 방침이었다. 하루 전에는 “주민세와 자동차세 인상을 관철하는 데 십자가를 지겠다”고 한 정종섭 행정자치부 장관의 결기가 없었던 일이 되는 촌극이 벌어졌다. 연말정산 환급 소급적용 파동까지 치면 연초부터 정부의 조세정책 백지화 시리즈가 3탄까지 숨가쁘게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정부가 제도 개선 철회를 손바닥 뒤집듯 하고 있으니 ‘영혼없는 공무원’ 소리를 들어도 할 말이 없게 됐다.
보건복지부가 밑그림을 다 그려놓고 갑자기 논의를 중단하기로 한 건보료 개편안은 그간 ‘모순 덩어리’로 불렸던 부과체계를 바로 잡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현행 부과체계는 김종대 전 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이 퇴임하면서 언급했듯 시대 변화를 반영하지 못한 데다 형평성에도 심각한 문제가 있다. 김 전 이사장은 집을 포함해 5억원이 넘는 재산과 연 2300만여만원의 연금소득이 있지만 자신은 직장가입자인 아내의 피부양자가 돼 건보료를 한 푼도 안낸다고 고백했다. 반면 반지하 셋방에서 생활고에 시달리다 자살한 ‘송파 세모녀’는 매달 5만140원을 내야 했다고 지적했다. 은퇴ㆍ실직ㆍ저소득자들은 소득이 없거나 적은데도 집 한 채와 자동차만 있으면 직장에 있을 때 보다 건보료를 더내야 하니 불만이 극에 달할 수 밖에 없다.
정부가 건보료 개편 논의를 중단키로 결정한 것은 개편후 건보료가 오를 ‘고소득 직장인’ 의 반발을 고려한 조치로 밖에 볼 수 없다. 기획단에서 논의된 방향대로 부과체계가 바뀌면 보수 외에 2000만원 이상의 추가 소득이 있는 직장가입자 26만3000세대는 월 평균 19만5000원의 건보료가 오르게 된다. 또 직장가입자의 피부양자로 건보료를 한 푼도 내지 않던 사람 가운데에도 2000만원 이상의 총소득이 있는 사람 19만3000여명은 지역가입자로 전환돼 월 평균 13만원을 새로 내야 한다. 정부가 건보료를 더 내게 될 고소득자 45만명의 눈치를 보면서 덜 내게될 지역가입자 80%의 울화통을 외면한다면 더 큰 저항을 부를 게 자명하다. 잘못을 개선하려는 뚝심보다 국민의 눈치만 살피는 무소신으로는 주요 국정과제의 추동력을 가질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