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품과 관련한 공공기관 비리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 마치 아무리 잘라내도 다시 자라나는 한 여름 무성한 잡초를 보는 듯하다. 이번에 검찰에 적발된 한국전력공사와 자회사인 한전KDN의 비리는 여전히 광범위하게 퍼져있는 공공기관 내 검은 관행의 심각성을 잘 보여준다.
검찰 수사과정에서 드러난 뇌물 수수 수법을 보면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비리 백화점이 따로 없다. 우선 로비 대상이 상임감사같은 최고위급 임원부터 발주를 담당하는 실무자까지 광범위하게 걸쳐있다. 검찰에 따르면 이들에게는 현금과 수표, 상품권 등은 말할 것도 없고 고급 렌트카나 수입 승용차, 최고급 오디오, 초고가 자전거 등이 전해졌다. 심지어 관련 청탁을 들어주고 프로골프 선수를 지망생인 아들의 레슨비와 해외 전지훈련비를 요구하는 경우도 있었다. 수뢰자의 취향에 따라 이른바 ‘맞춤형 뇌물’이 오고 간 것이다. 뇌물을 준 전기통신장비 납품업체 K사는 신생업체임에도 최근 6년간 63건, 412억원어치의 납품계약을 따냈다고 한다. 이런 뒷거래는 결국 공공요금 원가상승과 재정문제로 이어진다. 물론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 몫이다.
한전 납품과 관련한 비리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2013년에는 부사장이 체포된 적이 있었으며 크고 작은 사례는 일일이 열거가 어려울 정도다. 그런데도 이를 감시하고 적발해야 할 내부 시스템은 전혀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 현재 한전은 본사 감사실에 8개팀에 60명 가량이 있으며, 각 지역 본부에는 별도의 감사팀이 구성있다. 또 이와는 별도로 기동감찰팀도 가동하고 있다. 하지만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사익을 추구하는 내부자와 외부 이해집단의 은밀한 유착으로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다. 하긴 비리 감시를 총괄해야 할 상임감사가 되레 앞장 서 연루되는 판이니 더 할 말이 없다.
박근혜정부는 틈만 나면 공공기관 개혁을 주창하지만 달라진 건 하나도 없다. 비리가 사라지기는 커녕 오히려 그 수법이 진화하고 있다. 얼마 전 사회적 파장을 일으킨 가전업체 모뉴엘 사기대출 사건 역시 그 배후에는 뇌물을 받은 공공금융기관 임직원들이 있었다. 한전 뿐이 아니다. 대부분 독점 사업권을 쥐고 있는 공공기관은 납품 규모가 워낙 커 관련 부서는 비리의 소지가 상존하고 있다. 내부 감시망을 더 강화하고, 비리 연루자는 패가망신한다는 인식이 확 박히도록 처벌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 무엇보다 낙하산없는 투명한 경영진 구성이 공공기관 부패 근절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