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孔子)의 제자 가운데 자공(子貢)은 가장 변설에 능했다고 한다. 사기(史記) 공자중니열전(孔子仲尼列傳)에서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것도 그다. 공자의 고국인 노(魯)나라를 침공하려는 제(齊)나라를 막기 위해 자공은 제, 오(吳), 월(越), 진(晋)의 5개국을 돌며 외교전을 벌인다. 그 결과 춘추말기 전국(全國)의 판도가 바뀐다. 전국시대 말 소진과 장의의 합종연횡(合從連橫) 유세를 능가하는 외교술의 절정이라 할 만하다.
당시 제나라 권력자였던 전상(田常)은 노나라 침공을 부추긴 장본인이다. 정적(政敵)들을 싸움터에 내보내 제거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자공은 전상을 만나 약소국이던 노나라를 치는 것은 어려운 길이고, 남방의 최강국이던 오나라를 공격하는 게 쉬운 길이라고 주장한다. 전상이 의아해하며 묻는다.
“선생이 어렵다고 말한 바는 세상 사람들은 쉽다고 하며, 선생이 쉽다고 하는 바는 세상 사람들은 어렵다고 합니다. 무슨 까닭입니까?”
자공은 기다렸다는 듯 답한다.
“우환이 내부에 있는 자는 강한 나라를 치고, 우환이 밖에 있는 자는 약한 나라를 친다고 했습니다. 노나라에 승리하면 공을 세운 정적들의 입지만 높아집니다. 오나라에 패하면 정적들의 입지도 약해지고, 그들에 대한 백성들의 원망도 높아집니다”
결국 제나라는 오나라에 패한다. 전상은 모든 책임을 정적들에 돌리고, 백성들의 신임까지 얻어 권력을 독점한다.
때로는 아끼는 자는 쉬운 상대와, 꺼리는 자는 어려운 상대와 싸움을 붙이는 것도 전략이다. 중요한 것은 ‘나’에게 어떤 이익이 돌아오느냐다. 어려운 일이 쉬운 일인 듯, 쉬운 일이 어려운 일인 듯 보이게 끔 할 수 있어야 한다.
현대차그룹 정몽구 회장과 정의선 부회장 부자가 그룹 물류를 독점하는 현대글로비스 지분 일부를 팔았다. 한 달 전 거래실패를 겪었지만, 결국 성사시켰다. 현대차그룹은 일감몰아주기 규제를 피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한다. 다른 계열사에 팔았으면 일감몰아주기 규제를 피하기는 쉬웠을 지 모른다. 그런데 굳이 어렵게 외부에 매각했다.
LG그룹은 최근 방계 물류회사 범한판토스를 인수했다. LG상사는 지주사인 (주)LG가 아닌 총수 일가가 직접 소유한 회사다. 그룹 후계자 ‘0순위’인 구광모 (주)LG상무를 비롯한 오너 일가들도 개인적으로 30% 넘게 범한판토스 지분을 가져갔다. 다들 일감몰아주기 규제 피하느라 애를 쓰는데, LG는 되레 규제의 한 가운데로 들어갔다.
사람들은 늘 명분을 내세우지만 대부분 노리는 것은 실리다. 실리가 없으면 명분도 허망해질 수 있다. 국가건 기업이건 개인이건, 행위와 의사결정에 숨은 진짜 의도를 파악하려는 노력이야말로 화식의 필요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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