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올 것이 왔다. 2012년 대선정국에서 무상복지 공약경쟁이 뜨거웠는데 그 여파가 지금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무상복지를 실시한지 얼마 되지도 않아 정치권에서는 복지개혁 논의가 일고 있다. 세수부족으로 복지비용을 감당할 수 없으니 증세를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과 현실에 맞게 복지비용을 축소조정하자는 주장이 맞서고, 범국민조세개혁특위를 국회에 설치하자는 제안도 나왔다.
무상복지경쟁이 제1라운드였다면 복지증세논쟁은 제2라운드인 셈이다. 선진복지국가들이 복지확대과정에서 겪었던 갈등과 타협의 과정을 우리도 겪고 있는 것이다.
복지와 세금은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세금을 많이 내고 높은 복지혜택을 누리는 ‘고부담 고복지’를 선택할 것인지, 세금을 적게 내고 낮은 복지혜택을 받는 ‘저부담 저복지’를 선택할 것인지, 아니면 중간수준으로 세금을 부담하고 혜택도 중간수준으로 받는 ‘중부담 중복지’를 선택할 것인지를 선택해야 한다.
한국은 OECD 선진국에 비해 공공사회복지지출이 워낙 낮아 그 비율을 올려야 한다는 것이 복지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세금을 더 내고 복지혜택을 더 받는 ‘부담과 급여의 비례원칙’에 대해서 현실적인 부담을 느끼고 있어 복지모델의 선택을 놓고 정부와 정치권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는 것이다.
증세는 어찌 보면 쉬운 선택이다. 욕먹을 각오를 단단히 하고 일을 벌이면 된다. 그러나 욕먹을 각오가 되어 있다고 해도 성급하게 저지를 일은 아니다. 복지는 경직성 제도다. 성격상 한 번 시행하면 그 혜택을 조정하기가 쉽지 않다. 국가위기상황이 아니고는 재정이 어렵다고 이전으로 환원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유럽선진국가들이 복지개혁으로 엄청난 고통을 겪은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필자는 작금의 상황을 바라보면서 세 가지 점을 지적하고 싶다. 첫째, 증세논의는 하더라도 현재의 국가예산이 적정하게 편성되었는지 면밀히 살펴보아야 한다. 세출예산을 잘 못 짜면 OECD 수준으로 조세부담을 늘리더라도 사회복지지출이 미흡할 수도 있고, 사회복지지출이 증가해도 국민들이 느끼는 복지체감도는 큰 변화가 없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전체의 유사중복사업을 통폐합하고 집행과정에서 예산의 누수현상이 있는지, 공약유무를 떠나서 사업의 효과성이 얼마나 있는지, 전시성 사업은 없는지 냉정하게 짚어봐야 한다. 부족한 복지재정을 염출할 내부적 요인이 분명 있을 것이다.
둘째, 증세에 대한 국민공감대가 형성되어야 한다. 직접적인 세율인상 대신 연말소득정산의 소득공제를 줄인 것이 ‘편법증세’, ‘꼼수증세’라는 국민적 비난에 부닥쳤다. 이제 둘러가기는 틀렸으니 정공법으로 가야 한다. 복지를 어디까지 확대할 것인지, 증세는 어디까지 할 것인지 여러 가지 메뉴를 만들어놓고 국민적 선택을 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투명하고 정직하게 국민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결론을 도출해야 할 것이다. 차제에 선진복지국가들이 그러했듯이 대타협을 통해 한국형 복지국가모델을 정립했으면 좋겠다.
셋째, 부과의 형평성을 실현해야 한다. 건강보험료 부과체계의 문제점은 오래된 이슈다. 대표적으로 퇴직 후 소득이 감소한 지역가입자에 대한 과다한 보험료와 종합소득이 많은 직장가입자에게 대한 관대한 보험료가 문제가 되고 있다. 부과의 형평성이 충족되지 않으면 그것이 세금이든 보험료든 불신이 따르고, 그 불신은 납부저항으로 발전하게 된다. 복지확대 원론에는 찬성하는 이들도 형평성 문제를 이유로 증세에 반대할지 모른다. 정부는 무릇 ‘소득이 있는 곳에 과세한다’는 대원칙을 확실히 이행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