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에 개정된 세법 후유증이 지난달 연말정산파동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다. 유리지갑을 가진 급여생활자는 늘어난 소득세 부담 때문에 망연자실하고 있다. 예상을 뛰어넘는 화난 민심에 화들짝 놀란 정부가 대응책 마련을 약속하면서 사태는 일단 수면아래로 잠복한 상태다.
그러나 아무리 둘러대도 이번 세법개정은 복지재원 마련을 위한 증세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결국 대부분 국민은 노후를 준비할 여력이 줄었고, 100세 시대에 더 길어진 은퇴 후 생활 대책도 더 막막해지고 있다. 이는 결국 정부의 부담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지금부터라도 생각을 달리해야 한다.
은퇴설계는 가계와 정부 간 상호 보완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그러나 가계는 높은 교육비 지출과 주거비용으로 노후 준비 여력이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공적연금인 국민연금이 있다지만 실질적인 소득대체율이 18% 정도에 불과해 선진국과는 비교가 안되는 수준이다. 그런데 이마저도 2036년에는 재정이 고갈될 것이란 우울한 전망이 이어지고 있다.
재정으로 복지를 늘리는 데는 한계가 있다. 우리의 노후빈곤율은 무려 48%로 심각한 상황이다. 이를 완화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자발적인 노후준비를 권장하는 게 최선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정부는 세법개정을 통해 다자녀 가구와 노후 대비 연금저축에 대한 세제혜택을 오히려 축소시켰다. 그러다 연말정산 파동 이후 악화된 여론 의식해 저출산 노후 준비에 대한 세제혜택을 소폭 늘리기로 방침을 급선회한 것이다. 씀씀이를 줄이고, 노후 대비에 나설 수 있도록 유도하는 정책적 지원이 필요한 시점이다. 세제혜택을 확대해 은퇴 후 빈곤층 전락을 막을 환경 마련이 시급하다.
개정된 세법에서는 다자녀공제와 연금에 대한 소득공제가 세액공제로 변경됐다. 연금저축의 경우 가장 많은 근로자가 속해 있는 연소득 1200만~4800만원 구간에서는 한도인 연 400만원을 납입했을 때 이전에는 납입액의 16.5%를 돌려받았다. 하지만 개정 후에는 13.2%에 불과하다. ‘자발적 노후 준비’에 대한 혜택이 축소된 것이다. 이러다보니 연금저축 신규가입 건수가 3분의 1 수준으로 급감했다.
또 5500만원 이하 소득자는 개정 세법하에서도 세금부담이 높아지지 않는다고 정부는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대다수 국민들은 가중되는 세 부담에 조세저항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급기야 정부는 세법개정안을 다시 수정해 다자녀공제를 부활하고 노후 대비 연금저축에 대한 세액공제도 15%로 높이는 등 부산을 떨고 있다.
저출산ㆍ고령화 문제에 적극 대처한다는 정부의 정책방향에 역행하는 세제를 뒤늦게나마 바로 잡겠다는 의지는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현재 고려하고 있는 개편안 정도로는 턱없이 미흡하다. 물론 그 이전보다 연금보험 수요가 다소 늘어날 수는 있지만 이미 연간 400만원 한도를 채운 가입자에게는 더 이상 유인책이 되지 않는다.
실질적인 노후 준비를 위해서는 연간 납입액 한도를 늘리거나 세액공제율을 상향 조정하는 방안을 병행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해서 현재 10% 정도에 머물고 있는 60세 이상의 연금보험 보유 비중을 획기적으로 높여야 한다. 정부와 가계가 고통을 나누며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