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 검사도 받지 않은 특수 방화복이 일선 소방관들에게 무더기로 지급된 사실이 드러나 파장이 확산되고 있다. 내구성과 내화성이 생명인 방화복은 한국소방산업기술원(KFI)의 검사를 거쳐 합격 판정을 받아야 납품을 할 수 있다. 그런데 방화복 업체 2곳에서 만든 5300여벌이 이같은 정상 절차를 거치지 않았거나, 조작된 품질검사서를 첨부한 ‘가짜’였던 것이다. 국민의 재산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불구덩이도 마다않고 뛰어드는 소방관들에게 제대로 된 안전 장비 하나 챙겨주지 못하는 현실이 황당하고 참담하다.
방화복은 화재 현장에서 화마(火魔)와 맞서 싸우는 소방관들의 안전을 지켜주는 최소한의 보호장비이자 최후의 방어선이다. 이런 중요한 방화복을 엉터리로 만든 업체는 상응하는 처벌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어떻게 이런 검증되지 않은 장비가 검수 과정을 거쳐 버젓히 공급됐는지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는다. 업자들은 당장의 이익에 눈이 어두워 천인공노할 짓을 했다고 하더라도, 안전검사 여부조차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납품을 받은 것은 내부 직원의 공모가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원전 비리, 방산 비리처럼 소방 비리의 검은 고리가 연결돼 있는 건 아닌지 철저히 가려내야 한다. 아울러 소방장비 전반에 걸친 안전검사 체계도 다시 살펴봐야 한다. 어떤 경우에도 소방장비의 안전은 한치의 소홀함도 없어야 한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 소방관들의 근무 환경은 열악하기 짝이 없다. 특히 안전과 관련한 장비의 보급률이 민망할 정도로 형편없다. 가령 대원 위치추적 장비 송ㆍ수신기 부족률은 각각 96.4%, 87.5%에 달한다. 위험이 상존하는 화재나 재난현장에 투입되는 소방관 10명 가운데 9명은 위치가 파악이 안된다는 것이다. 그나마 일부 지역은 보급률이 0%인 곳도 있다고 한다. 다른 소방장비들도 부족률이 50%을 육박하고 있으며 숫자는 채워져 있어도 노후화된 것도 수두룩하다. 절대 필수장비인 ‘안전 장갑’ 등은 소방관들이 해외구매 사이트에서 개인 비용으로 충당하는 경우도 있다니 그저 부끄러울 뿐이다.
안전이 검증되지 않은 방화 장비를 들고 불과 맞서라는 것은 군인에게 가짜 총을 주고 전장에 나가라는 것과 마찬가지다. 소방관의 사기가 떨어지면 국민의 안전은 불안할 수밖에 없다. 소방관들이 제 돈 주고 장비를 사는 환경에서 사기 진작을 기대하는 것은 난망한 일이다. 아무리 재정이 어렵다지만 소방관 장비조차 마련해주지 못한다면 더 이상 국가와 정부의 존재 이유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