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김기춘 비서실장의 사의를 수용했지만, 후임자는 아직 발표되지 않고 있다. 적임자를 선택하지 못한 상태에서 서둘러 비서실장의 사임을 발표해야 할 정황은 이해할 만하지만, 1주일이 넘도록 새 인물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사실 어떤 비서실장이 좋을지 판단하기도 쉽지 않다. 불통(不通) 이미지를 극복하기 위해 통합형 인물이 거론되기도 하지만, 집권 3년차 국정동력을 되살리기 위한 실무형 전문가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이러한 생각에는 비서실장이 ‘막후권력’으로서 권능을 발휘해야 할 것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왕실장’이니 ‘기춘대원군’이라는 별명은 이러한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적인 맥락에서 비서실장의 자격이 그리 복잡한 것은 아니다. 핵심은 무슨 일을 해야 하며, 어떤 스타일의 사람이 좋을까 하는 점이다. 우선 비서실장이 담당해야 할 업무를 생각해 보자. 집권 후반기에 들어선 상황에서 대통령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두 가지다.
하나는 대통령 프로젝트를 지속시킬 수 있는 개혁동력을 살려내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권력형 비리를 차단하는 일이다. 뭘 하려고 해도 측근 비리와 같은 권력형 스캔들이 발생하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국민들이 돌아서는 순간이 정부 관료들도 손을 놓아버린다. 대통령이 임기 마지막까지 뭔가 일을 하기 위해서는 집안 단속만큼 중요한 일은 없다.
대통령이 추구하는 개혁작업은 입법으로의 완성이 필요하기 때문에 국회와의 협력이 매우 중요하다. 이완구 신임 국무총리를 비롯한 여권 출신 국무위원들이 그 일을 맡는 것이 좋다. 사실 청와대가 주도하기보다 국회를 중심으로 사회적 합의를 모아가는 것이 더 좋은 결과를 얻어낼 수 있다. 국회와 정부, 시민단체와 전문가가 참여하는 사회적 합의체를 통해 논의한다면 청와대의 부담도 줄이고 지속가능한 개혁도 가능할 것이다.
국정개혁과제를 국회에 넘긴다면 남는 문제는 집권 후반기의 각종 권력형 스캔들을 막아내는 일이다. 일종의 집안 단속이다. 비서실장으로는 권력형 비리를 효과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깐깐한’ 성향의 인물이 필요하다. 대통령의 뜻을 받들어 국정을 총괄하는 정무형 인사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이완구 총리를 임명한 상황에서 그런 인사를 임명하는 것은 정치적 알력을 배태할 가능성이 높다. 정무적 인사보다 감찰형 인물이 필요한 이유이다.
그리고 대통령이 가장 편안해 하는 사람이 좋다. 친박이든 누구든 대통령이 가장 편안해하고 인간적 신뢰를 갖고 있는 사람을 선택해야 한다. 가장 가까운 곳에서 가장 자주 만나는 사람이 편한 사람이 아니라면 그 자체가 고역이다. 대통령이란 직책이 갖고 있는 무게감을 인식한다면, 그리고 박근혜 대통령이 살아온 고통스런 삶을 이해한다면, 그에 대한 지지여부와 무관하게 그녀의 삶이 얼마나 힘들고 외로울 것이라는 점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대통령이 자신의 관점에서 좀 더 편하고 인간적인 신뢰를 갖고 있는 사람을 택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며 바람직한 일이다.
사실 대통령도 인간이며, 국민들은 인간적인 대통령을 기대한다. 국민들은 박근혜 대통령이 인간적으로 편안한 삶을 영위하면서 대통령의 역할을 잘해내기를 바란다. 모든 인간적인 가치를 포기하고 오로지 국가와 민족을 위해 헌신하기를 요구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동생들과의 만남도 좀 더 자주 갖는 것이 중요하다. 형제자매가 청와대를 방문하는 것이 무슨 그리 큰 잘못이겠는가. 그렇게 예뻐한다는 조카도 좀 더 자주 만나 큰고모의 사랑을 보여주시라. 그렇게 ‘정상적인’ 가족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또한 대통령의 중요한 일이다.
누구를 비서실장으로 선택할까 고민하는 대통령에게 가족같이 편안한 사람이지만 집안 단속 잘 할 수 있는 ‘깐깐한’ 사람이라면 금상첨화일 것이라는 조언을 드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