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홍길용 기자]흔히 점술서로 잘못 알려진 주역(周易)은 사실 과학서적이다. 오랜시간 자연을 관찰한 통계들을 일정한 기준으로 분류하고 해석한, 한마디로 세상이치를 담은 책이다.
주역 문언(文言)편에 ‘같은 소리는 서로 응하고, 같은 기운은 서로를 돕는다(同聲相應, 同氣相求)’는 말이 나온다. 또 ‘물은 젖은 데로 흐르며(水流濕) 불은 마른 데로 나아가며(火就燥), 구름은 용을 좇고(雲從龍) 바람은 범을 따른다(風從虎). 하늘에 근본한 것은 위를 친하고(本乎天者 親上) 땅에 근본한 것은 아래를 친하나니(本 乎 地 者 親下) 각기 그 류를 따르는 것이다(則各 從其類)’은 구절도 있다. 모든 일에는 조화(調和)가 중요하다는 뜻이다.
지금 우리 경제의 가장 어려운 숙제는 내수(內需)다. 경제살리기를 외치는 정부와 기업들은 한결 같이 가계경제와 내수회복이 최우선 과제라고 입을 모은다. 그런데 기업, 정부의 실제 행보를 보면 조화는 커녕, 앞뒤가 안 맞는다.
어렵다고 하지만 그래도 가장 돈 많은 경제주체는 기업이다. 그런데 씀씀이가 인색하다. 손해 볼 걸 알면서 당장 대규모 투자나 고용에 나서기야 어렵다 치더라도, 비용절감과 임금동결, 감원 등에 너무 적극적이다. 당장 적자가 나거나 빚더미에 시달리는 곳들이야 이해한다 치더라도, 내로라하는 대기업들까지 허리띠를 졸라매면 소비는 어떻게 하나. 국민들의 저축과 금 모으기로 모은 돈이 공적자금의 원천이다. 그 덕분에 오늘날 기업들이 이만큼 클 수 있었다. 과연 외환위기 이후 기업들이 이윤추구라는 목적을 넘어 순수하게 국민을 위해 희생한 것은 무엇인가?
정치권력의 행보도 이율배반적이다. 정부와 여권은 내수 살리겠다면서 세금은 더 걷으려 한다. 세 부담이 높아지면 소비심리는 얼어붙기 마련이다. 가계부채 해결한다면서 내놓은 정책은 가계 빚을 더 늘렸다. 빚 늘어나면 실질소비는 더 줄어들 수 밖에 없다. 야권은 한 술 더 떠 ‘과장된 김영란법’에 열을 올리고 있다. 과장된 김영란법은 소비를 비윤리적 행위로 왜곡시킬 수 있어 내수에 치명적이다. 전 국민의 절반을 잠재범법자로 몰아가면서 야권 스스로를 대단히 깨끗한 척 꾸미려는 듯하다. 국민들이 서로를 감시하도록 종용한다면 북한의 ‘5호 담당제’와 무엇이 다른가?
가계 재무구조가 어려워진 이유는 외환위기와 그 이후 자산버블 과정에서 신용팽창으로 그동안 쌓았던 부가 기업부문으로 넘어간 탓이다. 가계 소비가 부진한 이유는 사교육비 부담과 미래 노후에 대한 불안 탓이 크다. 기업과 정부가 지금처럼 상응(相應)과 상구(相求)를 외면한다면 가계의 화식(貨殖)은 계속 악화될 수 밖에 없다. 가계가 무너지면 기업도 정부도 온전하기 어렵다.
/kyhong@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