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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 칼럼-박승윤]일류 금융회사를 키우려면
지난해 5월중순부터 한달간 전국의 3000여개 금융점포 출입문에는 ‘빨간딱지’가 붙어있었다. 전년도 민원발생 평가 결과 소비자들의 불만이 많은 금융회사의 영업점들이었다. 금융감독당국은 당초 3개월간 빨간글씨로 ‘5등급(불량)’이라고 쓰인 딱지를 붙이도록 했는데 금융사들의 반발로 한달 만에 이를 내리게 했다.

빨간딱지는 소비자 보호를 제대로 못한다고 판정받은 금융회사를 공개해 소비자에게 경각심을 주기 위해서라지만 사실 망신을 주는 효과가 컸다. 망신에 그치는게 아니라 해당 금융기관에 대한 신뢰를 잃게한다. 이런 점포에 들어가는 고객은 ‘내 돈을 안심하고 맡길 수 있을까’라고 걱정할 수 밖에 없다.

이에 대해 지난 2월초 금융위원회가 주최한 ‘범금융 대토론회’에서 “빨간딱지가 붙으니 블랙컨슈머가 금융감독원에 민원을 제기한다며 협박하는 사례도 있다”면서 감독당국에 재고를 요청한 사람이 임종룡 금융위원장 후보자다. 토론회 당시엔 NH농협금융지주 회장이었다. 임 후보자의 반박 논리는 제재의 형평성이었다. 금융사의 소비자보호 미비 수준이 고객의 믿음을 추락시키는 ‘빨간딱지’ 제재를 받을 만큼 큰 지 살펴달라는 것이었다. 진웅섭 금감원장은 이를 수용해 올해부터 이 제도를 없애기로 했다.

사실 금융회사들이 감독당국에 바라는 것은 규제의 강도보다 일관성과 형평성이다. 규정에 명문화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수시로 내려오는 당국의 구두지도와 상황에 따라 변하는 제재 수위가 금융회사들의 창의와 자율 경쟁을 위축시키기 때문이다. 작년말 금융감독원장에 이어 이번에 금융위원장까지 교체된 원인중 하나인 KB국민은행의 주전산기 사태를 복기해 봐도 그렇다.

감독당국은 국민은행의 주전산기의 전환 과정을 검사한 결과, 왜곡 보고등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음에도 시시비비를 제대로 가리지 않고 문제를 제기한 감사에게도 징계를 내렸다. 또 결과적으로 KB금융지주 회장과 국민은행장 모두의 퇴진을 가져온 중징계 결정의 근거인 ‘금융기관의 건전한 운영 저해’에 대해 명확한 판단 근거를 제시하지 않았다. 둘이 드러내놓고 충돌하는 자충수를 두고 나서야 양쪽 모두 잘못했다며 징계했다. 경영진만 물갈이했을 뿐 교훈은 주지 못했다.

금융 개혁의 요체는 일관성있고 예측 가능한 게임의 규칙을 만들어 엄정하게 적용하되 그 안에서는 자율성을 보장하는 것이다. 소비자 보호 장치는 강화하고, 경쟁을 위축시키는 족쇄 규제는 철폐해야 될 것이다. 무엇보다 정치적 풍향이나 포퓰리즘적 여론에 휘둘리지 않고 법원만큼이나 독립적인 잣대와 도덕성을 바탕으로 시장을 감시해야 한다. 임 후보자가 내정 직후 밝힌 “시장의 코치가 아니라 심판이 되겠다”는 말도 같은 뜻일 것이다. 합리적이고 일관된 감독 방향을 제시하고, 그 안에서 금융회사들이 미래지향적으로 자유롭고 창의적으로 경쟁토록 할 때 삼성,현대차에 버금가는 세계적인 일류 금융기업이 탄생할 수 있다. 새롭게 호흡을 맞출 두 금융감독수장이 금융산업의 신기원을 열어주길 바란다. parks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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