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기 전 국가정보원장을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발탁한 박근혜 대통령의 인사는 비판을 받을 만하다. 형식적으로 보면 친박 인물을 이런 저런 요직에 돌려 쓰는 기존의 ‘수첩인사’와 ‘회전문 인사’를 답습했기 때문이다. 정보수장을 비서실장으로 데려다 쓰는 것은 권위주의 시대에나 있었던 방식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이후락ㆍ김계원 전 실장이 중앙정보부(국정원 전신)와 대통령 비서실을 이끈 적이 있다. 특히 이후락은 비서실장과 주일 대사, 중앙정보부장을 지내 이 실장의 커리어와 닮았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의 시대적 과제로 눈을 돌리면 최선은 아니지만 차선 정도는 될 법한 기용이다. 외교부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했고 노태우 정부의 의전수석 비서관, 이회창ㆍ박근혜 대선 캠프의 참모, 주일 대사, 국정원장 등 정부와 정계 안팎의 다양한 요직을 거친 경력이 당정청의 협력과 야권과의 소통, 수교 50주년을 맞은 한일 관계 개선, 그리고 대북 리스크 관리 등 현안과 난제를 풀어갈 수 있는 리더십의 기반이 되는 까닭이다.
실제로 이 실장의 초반 열린 행보는 전임 김기춘 실장과는 판이해 청와대가 달라질 것 이라는 기대감을 갖게 한다. 그는 수석실별 업무 보고에서 “원래 비서실장 기사는 손바닥만 하게 나와야 한다. 이렇게 언론이 크게 다루는 것도 비정상”이라고 했다. 이 실장은 또 “내각이 주도적으로 일할 수 있는 정상 상태로 가도록 노력하자”고 당부했다. 청와대가 비선 및 문고리 권력 논란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해야 하는지를 제대로 짚고 있어 다행스럽다. 전임 김 실장이 ‘왕 실장’, ‘기춘대원군’으로 불린 것은 대통령의 절대 신임을 내세워 여당과 정부에 일방적 소통을 했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급락한 것도 이같은 불통과 폐쇄적 국정운영에서 비롯됐다.
이 실장이 청와대 수석 회의 장면을 공개하는 등 언론과의 소통에 나선 것도 바람직하다. 언론과의 소통은 곧 국민과의 소통을 의미한다. 공공 노동 금융 교육 등 4대 개혁 과제의 수행이 동력을 얻으려면 국민적 지지가 뒷받침돼야 한다. 대통령이 고작 한 해애 한 번 기자회견을 갖는 방식으로는 국민의 이해를 구할 수 없다. 청와대는 또 대통령과 야댱을 잇는 가교가 돼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박 대통령이 중동 순방 후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와 회동하기로 한 것은 잘한 일이다. 제1야당의 대표와 머리를 맞대는 일이 더 많아져야 한다. 정치가 복원돼야 박근혜 정부의 경제살리기도 속도를 낼 수 있다.